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일찍이 영국의 탐험가였던 월터 롤리 경은 '바다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실제로 대제국을 건설했던 대부분의 국가는 제해권의 장악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겼다.
고대의 로마가 지중해를 제패했고, 제국주의 시대 영국이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으며, 21세기 현재 초강대국인 미국 역시 해양세력으로 분류될 만큼 제해권에 집착한다. 제해권에 대한 이러한 집념은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이어졌으며, 이런 분위기에서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을 동력원으로 하는 함선이 출현하면서 군함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가속화되었다.
특히 20세기 초반 영국이 진수시킨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그 등장과 함께 이전에 건조된 모든 전 세계의 모든 군함을 일거에 고물로 만들었으며, 당시 내로라하던 열강들은 너도나도 드레드노트급 전함, 아니 오히려 드레드노트급을 능가하는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까지 건조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건함경쟁은 너무나 치열한 것으로 최신예 함정이 진수되어 실전배치 됨과 동시에 구형이 될 정도로 세계열강은 끊임없이 더 크고 더 강한 배를 갈구했다.
본격적인 전함시대의 개막
당시 건조된 전함들은 한 척을 건조하는데 각각 국가예산의 0.5 ~ 1%를 차지할 정도로 큰 비용이 드는 전략 무기였으며, 이러한 전함들의 보유 숫자가 곧 그 나라의 국력을 나타내는 지표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스페인의 무적함대 격파 이후 약 300년간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던 대영제국은 1차 대전 이전 1개국 2함대 정책을 표방하며 이러한 건함 경쟁의 선두에 있었는데 1개국 2함대 정책이란 세계 1위의 해군력을 보유한 대영제국의 해군력이 2, 3위의 해군력을 보유한 국가의 해군력을 능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5대양을 넘나들며 작전을 펼치던 대영제국에 있어서 이는 선택이 아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을 비롯해 각국 유럽열강들은 이 끝이 보이지 않는 건함 경쟁에 막대한 피로감을 느꼈고, 결국 워싱턴 군축조약, 런던 군축조약을 체결하여, 각국이 국력에 비례해 건조할 수 있는 군함의 숫자를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2차 대전 발발직전 후발주자였던 독일과 일본은 어떻게든 이러한 조약의 허점을 파고들어 해군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꼼수를 부렸고, 특히 배수량(배를 물에 띄웠을 때 밀려나는 물의 부피로 배의 크기를 가늠하는 척도) 제한으로 인해 독일의 경우 포켓전함이라 불리는 기형적인 군함을 건조했을 뿐 아니라 일본의 경우 당시 보조전력으로 분류되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했던 항공모함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함대결전 사상
그렇다면 당시 각 국이 이렇게 군함, 군함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전함(Battle Ship)에 사활을 걸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지상전의 경우 일정한 전선이 존재하고, 한 두 번의 패배로 전력이 모두 소진되는 경우는 드물다.
또 급한 경우 추가 징집등을 통해 병력충원도 가능하다.
반면, 해전의 경우 결전의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교전국가들이 가용 가능한 해군전력 대부분을 투입해 승부를 가르는 방식이다 보니 한 두번의 패배가 곧 해군전력의 상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함선건조 및 함선운용에 필요한 숙련된 승조원들을 교육시키는데도 지상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 소요되므로 해전에서의 패배는 지상전의 패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각국은 함대전력의 중심인 전함의 건조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으며, 특히 러일전쟁 당시 쓰시마해전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틀란트해전의 전훈을 교훈 삼아 보다 강한 화력을 보다 원거리에서 투사할 수 있는 신형전함에 목을 맸던 것이다. 이렇게 한 두 번의 결전을 통해 적국의 해군력을 격멸시키고 제해권을 가져온다는 발상을 일컬어 '함대결전 사상'이라고 하는데 열강들 중 상대적으로 공업력과 생산력이 뒤쳐지는 관계로 속전속결이 필수적이었던 일본의 입장에서 이러한 함대결전 사상은 아주 매력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일본은 1941년 진주만 기습을 통해 본격적인 함대결전을 앞두고 미국 태평양 함대의 발을 묶어두는데 성공했으며
이를 통해 1942년 여름까지 북으로는 만주부터 남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의 판도를 구축했다.
다만, 일본은 세계최초로 항공기를 동원한 전략적 기습을 완벽하게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모함의 잠재력을 무시하고 함대결전에만 목을 맸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이러한 본격적인 함대결전을 위해 일본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무거운 전함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 전함이 바로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였다.
2편에서 계속
'밀리터리 잡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박 겉핥기로 보는 기병의 변천사 2편 (6) | 2024.11.04 |
---|---|
수박 겉핥기로 보는 기병의 변천사 1편 (9) | 2024.11.01 |
부러져버린 욱일승천의 날개 제로센 (3) | 2024.10.22 |
유럽평원에 울려퍼지는 표범의 포효 독일 구축전차 야크트 판터 2편 (5) | 2024.10.19 |
유럽평원에 울려퍼지는 표범의 포효 독일 구축전차 야크트 판터 1편 (4) | 2024.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