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잡설

해전의 변천사 1편

미사리 건더기 2025. 2. 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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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판도를 바꾼 해전

 
인류 문명이 태동하면서부터 전쟁이라는 행위는 지속되어 왔으며, 그 공간적 배경은 바다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바다에서 벌어진 전투가 최초로 기록된 전쟁은 트로이 전쟁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투경과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은 최초의 해전은 기원전 480년 경 페르시아와 그리스 폴리스 연합 간 발발한 살라미스 해전이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전략은 육지에서 그리스 군을 격파하는 한편 에게해의 제해권을 장악한뒤, 전선에서 대치중인 그리스 군의 주력을 우회 상륙해 후방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막대한 양의 보급품을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만큼 600백 척이 넘는 대선단을 동원했습니다.

살라미스해전
그리스가 결정적 승리를 거둔 살라미스 해전 상상화


하지만 살라미스섬 인근에서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해군이 대패하게 되면서 전쟁의 양상은 그리스 쪽으로 기울게 되었고, 결국 유럽까지 판도를 확장시키려던 페르시아의 기도를 좌절시킨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또 기원전 30여 년 로마의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에 벌어진 악티움 해전의 결과 역시 로마 공화정이 붕괴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됩니다. 그 외에도 레판토 해전, 한산도 대첩, 트라팔가 해전, 쓰시마 해전 등 굵직굵직한 해전의 결과는 직접적으로 교전 당사국들의 정치상황은 물론 후대 역사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냉병기 시대의 해전 


고대~근대까지 냉병기 시대의 해전은 사실상 육지에서 벌어지는 지상전의 연장과 다름없었습니다. 수십 톤의 중량을 가진
전투함을 격침시킬 마땅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적함을 격침시키기 위해서는 선수에 트램을 부착하고 전속력으로 상대군함을 들이받는 충각 전술이 유일하다시피 했습니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해전의 양상은 원거리에서 화살 또는 투석기 등을 동원해 적군함에 탑승한 갑판위 승조원들의 숫자를 최대한 줄인 후 적함을 끌어당겨 백병전으로 승부를 보는 형태였습니다. 이러한 전투양상은 고대는 물론 폭발식 포탄이 발명되기 전인 근대까지 동서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트라이림
고대 그리스의 주력 군함이었던 트라이림 (3단 노 전선)

 
따라서 군함 자체의 성능 보다는 군함에 탑승한 전투원의 숫자가 얼마나 되느냐가 승패의 주된 관건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군이 독립병종이라는 인식 자체가 희박했습니다. 즉 육군을 배에 태워서 싸우면 그게 해군이 되는 식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동시대 동 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중세까지 별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다만 유럽의 경우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전 세계의 바다를 활동무대로 삼게 됨에 따라, 육군과 독립된 별도 병종으로써 해군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이에 따라 본격적인 해군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물론 이 당시의 해군은 현대의 해군과는 달리 해적과 정부가 고용한 용병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신항로가 개척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 유럽 각국은 식민지 확보 및 유지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배에 타고 다니면서 필요할 경우 상륙하여 무력을 투사할 수 있는 병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물론 개별 함선에도 해전에 능숙한 수백 명의 승조원이 탑승하여 필요할 경우 제한적인 상륙작전을 벌이기도 했으나 육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율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대규모 육전에 대한 훈련을 받지 못했던 해군 승조원들은 차라리 선상의 집단 난투극에 가까웠던 당시 해전에서는 잘 싸웠을지 몰라도, 본격적인 육전을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에 배에 타고 다니다가 필요할 경우 상륙하여 일반 보병처럼 싸울 수 있는 부대를 함선에 배속시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예병력으로 분류되는 해병대(또는 해군육전대)의 시초입니다. 육군과 동일한 수준의 제식훈련을 받고 군기가 바짝 든 이런 해병대원들은 함선 내 다른 일반 승조원들과 달리 평상시 각종 잡역에서 면제됐을 뿐 아니라 식량창고, 함장실 등을 경비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함 내의 군사경찰 임무도 수행했습니다. 

해병대
19세기 영국 해병대원 (Royal Marine)을 묘사한 그림

 

 

열병기 시대의 개막과 해전 


중세이후 본격적으로 전장에서 화약이 쓰이게 됨에 따라, 해전의 양상도 다소 변했습니다. 함선의 양측면에 함포를 장비하고 함포로 적함을 공격하는 방식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함포 사격으로 적함을 격침시키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폭발탄이 등장하기 이전 포탄은 그냥 무거운 쇠구슬에 불과했기 때문에 적의 함포에 피격됐다고 해서 영화처럼 폭발이 일어나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고 보통의 경우 포탄의 비행진로에 위치한 운 없는 승조원들이 희생되거나 함선에 구멍이 나는 정도의 피해를 입히는 정도가 대다수였습니다. 물론 당시 함선은 목재로 건조되었기에 함선이 포탄에 피격될 경우 나무조각 파편에 의해 발생하는 인명피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긴 했습니다. 
 
따라서 16~19세기의 해전은 최대사거리에서 부터 함포사격을 교환하며 서서히 접근하다가 거의 영거리 사격이 가능할 정도의 거리에서 함포 일제 사격으로 적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힌 뒤 널빤지나 갈고리 등을 이용해 적함에 올라타 선상 백병전을 통해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 대세였습니다. 다만, 당시 수준의 함포로 적함을 격침 시킬 수 있냐 없냐 하는 것과는 별개로, 적함을 나포하는 데 성공했을 경우 주어지는 보상이 막대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가급적 백병전을 통해 적함을 접수(?) 하는 쪽을 선호하긴 했습니다. 

트라팔가해전
트라팔가 해전에 투입되어 교전중인 프랑스와 영국의 전열함(line battle ship)들. 통칭 Man of War.

 
본격적으로 함포 일제사격을 통해 적함을 격침 시키는 것으로 해전의 양상이 변하게 된 것은 1830년대 등장한 폭발탄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포병 장교였던 앙리 조세프 펙상이 최초로 고안한 이 포탄은 적함에 명중할 경우 선박 외피를 뚫고 선내로 들어가 폭발을 일으키도록 제작되었습니다. 때문에 피격된 함선에 적재된 화약이 유폭 되어 한순간에 함선이 격침되거나 폭발과 함께 발생하는 화재로 인해 함선이 전소되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적 함포에 의해 관통되는 것을 막기위해 함선 외피에 철판을 두르고, 폭로면적을 최대한 줄인 함선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인류는 드디어 철갑함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철갑함
남북전쟁당시 등장한 최초의 완전 철갑함 USS 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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