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GOP 군생활 시절 썰 1편

미사리 건더기 2024. 10. 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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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04 군번으로 2년 동안의 군생활 중 10개월여를 GOP에서 보냈습니다.
 

(gop에 대한 내용은 링크 참조)
 
2024.08.30 - [밀리터리 잡설] - 최전방 경계부대 GOP

최전방 경계부대 GOP

1. 군사분계선과 GOP의 차이가끔 언론보도를 보면 철책과 철조망이 끝없이 이어진 산등성이를 따라 소총을 휴대한 병사들이한손으로 철책을 만져보며 올라가는 모습이 나오곤 한다. 이곳이 바로

misaritheqoo.tistory.com

 

GOP 첫 투입

 
제가 근무하던 곳은 연천으로 동부전선에서 GOP 생활을 마치신 전우님들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한 GOP 생활을 했습니다만, 그래도 맥도날드 고지, 통곡의 벽 등 나름 있을 건 다 있던 산악지형에서 남부럽지 않은(?) GOP생활을 만끽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원하는 훈련소를 지원해서 갈 수 있었고 모범적인 대한민국 밀덕 답게 철책근무를 희망했던 저는 102 보충대, 306 보충대(지금은 사라진) 둘 중에서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강원도는 아니지 (동부전선 전우 여러분 진심 리스펙트) 하는 생각에 306 보충대에 지원을 했고 결국 원하던 대로 철책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부대마다 다르긴 했지만 저희부대는 12개월 주기로 1개 연대(3개 대대로 구성) 섹터를 3개 대대가 돌아가면서 근무를 섰고 저는 입대 후 1년 4개월은 FEBA에서 근무하다가 마지막 10개월을 GOP에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GOP투입 전 약 2개월 동안 GOP투입 전 사전 교육을 받았고 (즉각 조치 사격훈련, 수류탄 투척훈련, 교전수칙, 귀순자 발견 시 유도 요렁, 임무지형지물 파악 훈련 등) 마침내 2005년 7월 GOP에 투입되게 됩니다.
 
GOP투입 시 주둔 대대에서 출정식을 마친 뒤 오후 다섯 시경 대대원 전체가 60 트럭을 타고 위병소를 나가는데 위병소부터 인근 교차로까지 도로 양쪽에 군인 가족 수백 명이 도열해서 꽃을 뿌려주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  경계근무 서러 나가는데 길에 꽃 뿌려 주니까 난데없이 전쟁 출전하는 장병들처럼 분위기가 사뭇 비장합니다. 
 
기도비닉을 위해 트럭 수십대가 라이트를 끈 채로 한참을 달려 이윽고 민통선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완전군장을 하고 약 4~5km 정도를 도보로 행군해서 초소까지 이동하고 거기서 기존 병력과 교대를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GOP 근무교대를 감추기 위한 의도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존에 GOP에서 근무했던 선임말로는 교대 후 밤 12시가 되면 대남확성기로 '오늘 GOP에 투입된 xx사단 xx연대 xx대대 xxx중령 이하 장병 여러분 GOP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대남방송을 하곤 했답니다. 투입 첫날 그 얘기가 생각나서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납니다.
 

소나타만 하던 멧돼지

 
아무튼 초긴장 상태의 첫 투입을 앞두고 전 소대 병력이 소대막사 앞에 모여 실탄과 수류탄을 수령받고 투입 전 비장하게 
복무신조를 복창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뭔가 웅성이는 소리가 납니다. 분대장이었던 저는 도열한 분대원 맨 앞에 서있었던 지라 무슨 일인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웬 멧돼지 일가족이 어슬렁어슬렁 대면서 막사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컸습니다. 저는 선임들이 멧돼지가 경차 만하다고 했을때 군인 특유의 허풍으로 생각하고 그냥 웃어넘겼지만 진짜 
커도 너무 컸습니다. 경차는 무슨 소나타정도는 되보였습니다. 어미인듯한 그 덩치 뒤로 조그만 새끼들이 올망졸망 따라오는데 다들 너무 긴장해서 뒷걸음질만 치고 있었습니다.  거리는 불과 10미터 남짓. 이 사태를 어쩌지 어쩌지 하고 소초장 이하 전 소대원이 당황하고 있는데 분대원 한 명이 나지막하게 귓속말을 합니다.  '분대장님 실탄 장전 합니까?' 
 
'아니 이 미친놈아 지금 왜 장전을해 가만히 있어봐;;;'  여기서 한 명 총질하면 난리 날 것 같다는 생각에 간신히 분대원을 진정시키고 동태를 살폈습니다. 어슬렁대며 다가오던 멧돼지들은 긴장한 우리는 거들떠도 안 보고 유유히 잔반통(전문용어로 짬통)에 다가가서 매우 익숙한 포스로 잔반을 털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야 초짜지 그 멧돼지는 이미 이곳 사정에 정통한 듯했습니다.  빨리 근무투입을 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어디서 뭔가 날아옵니다. 네 돌멩이입니다. 당시 막사 오른쪽에 높이 4미터 되는 유류탱크가 있었는데 그 위에 FEBA 시절부터 좀 상태 안 좋아서 GOP를 데려가네 마네 중대장님을 고민하게 했던 문제병사 겸 취사병이 올라가 있습니다. 
 
네 그 놈아가 멧돼지한테 주먹만 한 돌멩이를 던진 겁니다.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 돌은 정통으로 소나타 멧돼지의 정수리에 명중하고 맙니다. 우적우적 짬을 먹던 멧돼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놈 아를 쏘아봅니다. 
40여 명 소대원이 불과 10미터 거리에서 멧돼지와 대치 아닌 대치중인데 이 새끼가 그 멧돼지를 도발하려고 돌멩이를 던진 겁니다. 순간 멧돼지가 아니라 저 새끼를 쏴야 하나, 헤드샷이 가능할까 등등 별의별 생각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수십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모두가 미동도 없이 침묵에 휩싸인 그때 갑자기 멧돼지가 고개를 뒤로 돌려 사라집니다. 마지막 새끼 멧돼지까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마자 소초장이 그놈아를 불러 조인트를 깝니다. 선진군대인 만큼 좋게 좋게 잘 타일르고 40여명 소대원의 격려(?)와 덕담(?) 이 그 병사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울기직전의 얼굴로 막사로 돌아가는 그 취사병을 뒤로 하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GOP 첫 경계근무를 위한 이동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GOP에서의 첫 하루가 시작 됐습니다. 
 

gop
GOP의 야경

 
 
 
 
- 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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