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P 군생활 시절 썰 2편
GOP 군생활 시절 썰 1편 보기
2024.10.14 - [잡담] - GOP 군생활 시절 썰 1편
GOP 군생활 시절 썰 1편
저는 04 군번으로 2년 동안의 군생활 중 10개월여를 GOP에서 보냈습니다. (gop에 대한 내용은 링크 참조) 2024.08.30 - [밀리터리 잡설] - 최전방 경계부대 GOP 최전방 경계부대 GOP1. 군사분계선과 GOP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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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겪어본 실제상황
제가 상병을 갓 달았던 05년 어느 초여름. 당시 우리 소대는 5분 대기조였습니다. 군필자는 다들 아시겠지만 5분 대기조는 긴급상황 발생 시 5분 이내 출동준비를 완료한다는 의미로 대대에서 분대(10여 명 규모) 별로 돌아가며 지정되는 식이었습니다. 5분 내 출동을 위해 5분 대기조는 전투복, 전투화를 착용하고 취침하며 샤워도 할 수 없습니다. 보통의 경우 당직사관이나 당직사령이 불시에 5분 대기 상황을 발령하여 출동상태를 점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고약한 간부들의 경우 새벽에도 갑자기 5분 대기 상황을 발령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날도 새벽 4시경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며 행정반에서 5분 대기 출동 준비를 하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곤히 잠들어있다가 잠에서 깬 부대원은 이 시간에 또 누가 5 대기를 걸었냐며 툴툴 대며 단독군장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행정반에서 이어지는 방송에 모두 일순간 동작을 멈추고 맙니다.
"5분 대기 출동준비 바람.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 총격 도발 발생."
"실제상황. 반복한다 실제상황. 차단작전 준비바람"
아니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실제 상황이라니...... 그렇게 모두 굳은 표정으로 단독군장을 하고 실탄을 지급받고 말없이 육공트럭에 올라탔습니다. 당시 주둔지가 GOP에서 차량으로 불과 10분거리에 떨어져 있던 탓에 그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였습니다. 통신병이었던 저는 PRC-999K를 등에 맨 채 트럭에 올라 무전을 듣고 있는데 사방에서 무전이 날아오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트럭에 시동이 걸리고 출동명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모두 말없이 무릎 앞에 세워둔 소총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긴장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5분, 10분이 지나도 출동명령이 안 떨어집니다.
분대장이 후임 한 명한테 행정반 가서 상황 좀 들어보고 오라며 등을 떠밉니다. 그리고 잠시뒤 행정반에서 해맑게 웃으며 나오는 후임이 말합니다. "작전취소랍니다. 북한군 총격 도발이 아니라 아군 총기 오발 이랍니다.!" 그러 제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오 무장공비 잡아서 조기전역 하나했더니만 아쉽네" , "그러게 말입니다 헬기 타고 집에 가는 줄 알았지 말입니다." 다들 안도감에 허세를 부리며 트럭에서 내려 탄을 반납하고 군장을 풀고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밝혀진 충격적인 진실
아침부터 소대가 어수선해서 뭔 일인가 하고 기상시간 보다 일찍 눈을 떴습니다. TV뉴스화면에는 긴급속보라는 메시지가 떠있고 소대원들은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긴급속보 내용은 간밤에 연천에 위치한 모 육군 부대 GP에서 총기난사가 발생해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행정반에서 내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소대원 한 명이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우리 사단 맞답니다! 어제 상황이 아군 오발이 아니라 총기 난사 였답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사망자 명단이 송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김 XX, 박 XX, 조 XX…….
‘조 XX?! 설마 내가 아는 그 조 XX??’
훈련소 바로 옆자리 동기로 덤벙대던 저를 항상 옆에서 챙겨주던 해맑던 친구. 군생활이 재밌을 것 같다며 자대생활이 기대된다던 그 친구. 사고가 난 부대가 그 친구가 배속받은 8X연대라는 걸 보니 그 친구가 분명했습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사단에서 근무하던 훈련소 동기 형한테 전화로 물어보니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 친구가 맞다고 합니다.
비록 훈련소 동기였지만 그래도 6주간 동고동락하며 친하게 지냈던 지인이 그렇게 어이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일단 부대명이 노출됐기에 가족들이 걱정할까 싶어서 전화부스로 달려갔는데 이미 행정반, 전화부스가 만원입니다. 줄을 길게 늘어서서 다들 집에 전화해서 아무 일 없다고 안심시키기 바쁩니다.
저도 여기저기 전화 걸어 아무 일 없다고 사단은 같은 사단인데 다른 부대라고 걱정 말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화단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아무 도움도 청할 곳 없는 정말 고립된 GP안에서 다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리고 북한군이 아니라 아군이 총을 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괴로운 심정이었을까?
하늘을 올려다보니 6월 초여름의 맑은 하늘은 무심할 정도로 쨍쨍했습니다.
그날 530GP에 있던 대원들은 천지가 진동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일을 겪었을 텐데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매미가 목청껏 울고 취사장에서는 부산하게 밥 짓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실감한 하루였는데 야속할 정도로 세상 모든 게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꼭 한 달째 되는 날 저는 GOP에 투입되었습니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