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GOP 군생활 시절 썰 4편

미사리 건더기 2024. 10.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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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6 - [잡담] - GOP 군생활 시절 썰 3편

 

GOP 군생활 시절 썰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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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엉망이었던 북한군 상태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북한군 병사는 미동도 하지 않고 쌍안경으로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뭔가 허무했지만 그래도 총 안 겨눈 게 어디냐며 애써 긍정회로를 돌렸습니다. 
풀이 죽은 저와는 반대로 부사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습니다. 
'재미없는 놈' 혼자 투덜거리며 이곳 저곳 쌍안경으로 북한군 지역을 둘러보는데 한 개 분대 정도 되는 북한군들이 GP를 따라 일렬로 걸어가는 게 보였습니다. '아 쟤들이 말로만 듣던 민경대대 애들이구나' 맨날 뉴스에서만 보던 북한군을 실제로 보니 뭔가 신기했습니다. 외국인을 처음 봤을 때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총을 가로매어 한 상태에서 걷고 있는데 총 길이랑 북한군 키랑 비율이 뭔가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얼핏 보면 총길이가 1미터가 훌쩍 넘어 보일 정도로 총이 길어 보였습니다. 근데 총은 분명히 제가 아는 북한군 68식 아니면 88식 소총인데 그럴 리가.... 네 그렇습니다. 그냥 북한군 신장이 작았던 겁니다. (.....) 
 
투입전 교육 때 듣기로 분명 민경대대는 최전방 부대라 북한군 중에서도 비교적 보급이 잘 나오고 출신성분도 좋은 사람들로 뽑는다고 했는데 키가 160도 채 안 돼 보였습니다. 한두 명만 그런 게 아니라 분대원 전원이 그래 보였습니다. 

북한군 민경대대 부대원


최전방 지역 민경대대가 저 정도면 후방에 있는 다른 북한군 상태는 어떨지 대략 짐작이 갔습니다. 
부사수한테 쌍안경을 넘겨주고 말했더니 부사수도 깜짝 놀랍니다. 미성년자 아니냐며 저를 쳐다봅니다.  
저는 피식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5년도 그 당시 처음으로 북한군을 본 느낌은 그랬습니다. 
 

한국군과 북한군의 부식추진 방법

 
군인도 군인이지만 깜짝 놀랐던 게 GP 근처 사방이 밭입니다. 자세히 보니 닭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일이야 GP가 원두막도 아니고?? 여기가 상상했던 살벌한 풍경의 GOP가 맞나 싶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북한군의 부식추진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주간근무때 고가초소에서 한국군 섹터를 보고 있으면 매일 아침 냉장트럭이 부식추진을 위해 달려옵니다.
당연히 메뉴는 그날그날 다릅니다. 일부 군전역자들 말로는 구제역 때는 주야장천 돼지고기만 나오고 조류독감 때는 주야장천 닭만 나왔다며 투덜대는데 제 기억으로는 식단이 그날그날 바뀌는 게 아니라 월단위로 미리 계획되어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다가 군대에 입대한 우리라면 전혀 새로울 게 없는 풍경입니다. 
 
자 그럼 이제 북한군의 부식추진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트럭 이런 거 없습니다. 정확한 주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보통 보름에 한번 저 멀리서 땅딸막한 인민군이 GP 쪽으로 접근하는 게 보입니다.  거리가 점차 좁혀지면서 뭔가를 둘러매고 있는 게 보입니다. 네 커다란 보자기 2개가 보입니다. 만화에서 흔히 보던 천으로 만든 돈자루 같이 생겼습니다. 교육받은 내용이 사실이었습니다. 보자기 하나는 쌀 다른 하나는 소금이라고 합니다. 저게 보급의 전부입니다. 나머지 반찬 등은 모두 자체조달입니다.

gp근처가 텃밭 투성이인게 이해가 갔습니다. 21세기판 둔전병이 따로 없습니다. 보면 경계는 관심 없어 보이고 맨날 곡괭이랑 쟁기로 땅이랑 싸우고 있는데 정말 가관입니다. 뭔가 살벌하고 긴장감 감도는 휴전선을 상상했는데 김이 빠집니다.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북한군 

 

그렇게 1~2주가 지나고 슬슬 GOP근무에 적응이 돼 갈 무렵, 본격적으로 푹푹 찌는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맞은편 GP에서 

근무하던 북한군들도 어느새 부터 머리가 하나밖에 안보입니다. 쟤들은 근무를 혼자 서나? 하는 생각도 잠시 순찰을 도는 것으로 추정되는 군관이 근처에 나타나면 갑자기 안 보이던 머리 하나가 솟아납니다. (......) 

군대에서 우스갯소리로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한국이나 북한이나 마찬가지구나 하며 피식 웃은 기억이 납니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무더위가 지속되던 어느 여름 한 낮이었습니다. 근무를 서던 북한군 한 명이 갑자기 초소를 이탈하여 비탈길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래간만에 특이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흥미가 생겨 유심히 그 병사를 살펴봤습니다. 당시 북한군 섹터에는 임진강과 합류하는 작은 개울이 하나 있었는데 전투복을 훌러덩훌러덩 벗더니 바로 입수해서 멱을 감기 시작 합니다. (......)

 

한국군의 경우 GOP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최소 2인 1조로 움직이며 이동시 항상 소총을 휴대합니다. 작업도구등의 운반으로 인해 소총을 휴대하기 어려울 경우 별도로 단독군장을 한 경계병을 배치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합니다. 

다른 부대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있던 부대는 어떠한 경우라도 이 수칙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한국이라면 예비군이었어도 강제퇴소 당할만할 일을 현역 민경대대 병사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가 찼습니다. 

북한은 한국군의 침투보다는 탈북을 더 경계한다던데 그 말이 사실인 듯싶었습니다. 군대라기보다는 그냥 군복 입은 산적 떼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복 입은 산적들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나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 후반야 근무를 마치고 오침을 하고 있는데 상황실에서 방송이 나옵니. 

신속히 K-6 (12.7mm 중기관총) 진지를 점령하랍니다. 이건 또 무슨일이냐며 궁시렁궁시렁 군장을 착용하고 부사수와 열심히 뛰어가 고가초소 근처에 위치한 K-6 진지를 점령합니다. 

K-6 중기관총

 

숨을 헐떡이며 상황실에 인터컴을 날렸습니다. 진지점령 완료 했는데 무슨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쌍안경으로 북한군 초소를 보랍니다. 네 그렇습니다. 군복 입은 산적들의 꼬장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북한군 초소옆에는 무덤 봉분 같이 생긴 둔덕이 있었는데 사전교육 시 북한군의 14.5mm 고사포 진지라고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고사포 진지 포문이 열려있었습니다. 

14.5mm 고사포

 

한국군도 평소엔 K-6 진지 문을 닫아놓는데 북한군이 가끔 고사포 포문을 열면 맞대응을 위해 한국군도 기관총 진지 포문을 개방합니다. '뭐지 총격 도발이라도 하려는 건가?'  당시 교전수칙으로 북한군 총격도발시 3배로 대응하라고 배웠었습니다. 

 

손가락 중지만한 실탄이 줄줄이 걸려있는 K-6 기관총의 뚜껑을 한번 열었다 이상유무를 확인하고 닫았습니다. 부사수에게 진지에 비치된 예비탄통을 꺼내오라고 지시하고 북한군 진지를 감시했습니다. 총기청소 중인지 훈련 중인지 북한군 서너 명이 부산하게 진지 주위를 뛰어다니는 게 보였습니다.

 

쌍안경에 빗자루 처럼 삐죽 튀어나온 고사총 총열이 선명히 보입니다. 마른침을 삼키며 동태를 예의주시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무의미한 대치가 지속됐습니다. 졸려 죽겠는데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건지 부아가 치밉니다. 그렇게 꼬박 두 시간여가 흐른 뒤 드디어 고사총 진지 포문을 닫습니다. 

 

인터컴으로 상황종료를 보고하고 우리도 포문을 닫고 철수합니다. 피같은 취침시간 두 시간이 날아갔습니다. 

역시 북한군은 우리의 주적이 맞았습니다. 장담컨데, GOP에서 반년정도만 근무를 서보면 별도의 대적관 교육이 필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GOP투입 준비 중인 병사들

 

그 후로도 북한군은 수시로 고사총 진지 포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우리를 농락(?) 했습니다. 처음엔 긴장감이 컸지만 밤이 길어지는 가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가뜩이나 수면시간이 부족한판에 그 시간까지 방해하는 북한군들이 정말 증오스러웠습니다. 후임 중 한 명은 악이 받쳐서 차라리 '근처에 한 발만 쏴봐라 아주 가루를 만들어주마' 라며 이를 갈았습니다. 

 

그렇게 GOP에 투입된지 몇 달이 지났을 무렵 어느 날, 후반야 근무가 끝나 동이 틀 때쯤 북한 지역 저 멀리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는 게 보였습니다. 트럭이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꼬박 10개월간 GOP에서 근무하면서 북한군이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은 다섯 번도 못 봤습니다. 제가 보고 느낀 북한군은 그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아무튼 그 트럭이 한참을 달려 남쪽으로 내려오는걸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데 거리가 좁혀지자 트럭뒤에 북한군이 가득 실려 있는 게 보였습니다. 인터컴을 날려 북한군 트럭 한대가 남하 중인데 트럭 뒤에 북한군 상당수가 탑승하고 있는 것 같다고 보고했습니다. 상황실에서는 소초장이 직접 인터컴을 통해 경계를 늦추지 말고 특이사항 발생 시 계속 보고해 달랍니다.

 

트럭은 계속 남쪽으로 이동해 북한군 GP 근처에 도착해서야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최소 2개분대 병력이 트럭에서 우르르 내리는 게 보였습니다. 갑자기 손에서 땀이 났습니다.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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