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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전쟁사 및 밀리터리 잡설

쓰시마 해전 3부 - 7개월의 항해, 이틀 만에 무너진 함대

by 미사리 건더기 2026.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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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6 - [밀리터리 잡설] - 쓰시마 해전 1부 -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러시아 발틱함대

 

쓰시마 해전 1부 -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러시아 발틱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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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해전 2부 - 7개월의 항해 끝에 도착한 죽음의 바다

2026.08.16 - [밀리터리 잡설] - 쓰시마 해전 1부 -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러시아 발틱함대 쓰시마 해전 1부 -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러시아 발틱함대"러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쓰시마 해전과 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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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쓰시마해협까지 도착한 러시아 함대는 결국 일본군의 감시망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영국 어선과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아프리카를 돌아 열대 바다에서 석탄과 고장, 질병과 씨름한 끝에 도착한 극동이었지만 정작 이들을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일본의 연합함대였습니다.

 

그렇게 찾아 헤맬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일본군이 이제 좀 피해 갔으면 싶으니 알아서 나타난 겁니다.

물론 일본군 입장에서야 러시아 함대의 사정 따위 알 바는 아니었습니다. 이들을 놓치면 지금까지 준비한 결전의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었으니까요.

 

기다리던 자와 지나가야 하는 자

1905년 5월 27일 새벽, 러시아 함대의 출현을 보고받은 도고 제독은 연합함대를 이끌고 출격했습니다. 일본의 정찰함들은 러시아 함대와 접촉을 유지하며 이동 방향과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한번 들켰다고 곧바로 전함들이 튀어나와 포탄을 갈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눈을 붙여놓고 어디로 가는지 확인한 뒤 주력함대를 데려오는 방식이었습니다.

러시아 함대 입장에서는 뒤에서 누가 계속 따라오는데 떼어놓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그놈을 잡겠다고 온 함대가 쫓아갈 수도 없는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여기서 양측의 처지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도고는 러시아 함대를 붙잡아 싸우면 됐지만 로제스트벤스키는 싸움을 치르더라도 어떻게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함대를 데려가야 했습니다.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 것과 그 적을 뚫고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렇다고 러시아 함대가 숫자부터 형편없이 밀리는 오합지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형 전함도 있었고 대구경 함포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이쪽도 제법 살벌한 함대였습니다.

 

다만 배를 여러 척 모아놓았다고 저절로 강한 함대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는 아무리 거대한 전함도 태평양에서 표류하는 나뭇잎과 별다를 바 없고, 바다위의 배는 롤링과 피칭현상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이는 파도로 인해 배가 좌우로 기울어지는 현상과 선수와 선미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전함에서 포격을 가할때는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하여 탄도를 계산하는 절차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이게 정지표적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함대가 대형을 갖추어 함께 기동하면서, 적을 발견하고, 거리를 재고, 포탄이 떨어지는 위치를 확인하면서 사격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앞선 배가 방향을 바꾸면 뒤따르는 배도 그 의도를 알아먹어야 했고, 얻어맞는 와중에도 그 일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서류에 적힌 전함 숫자에는 이런 귀찮은 사정까지 표시되지는 않았습니다. 본국에서는 네 척 더 보냈으니 든든하겠거니 했겠지만, 현장에서 그 배들을 끌고 싸워야 하는 사람 생각은 좀 달랐겠죠.

일본 함대가 먼저 움직일 위치를 잡고 러시아 함대의 앞을 압박하면서, 두 함대는 마침내 주력끼리 맞붙을 순간을 맞았습니다.

발틱함대
러시아 제국 제2, 제3 태평양 함대의 기동로

적 앞에서 감행한 '도고 턴'

오후 들어 양측 주력함대가 서로를 확인하자 도고는 상당히 아슬아슬해 보이는 기동을 시작했습니다. 기함 미카사를 선두로 함정들을 차례차례 크게 돌려 러시아 함대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 것입니다.

훗날 도고 턴으로 유명해진 변침이었습니다.

도고제독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여기서 잠깐 당시 함대가 싸우는 방식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영화처럼 전함들이 적을 향해 우르르 돌진하면 기세는 좋겠지만, 뒤에 있는 배는 앞에 있는 아군 때문에 제대로 쏘지도 못합니다. 함포를 많이 달아놨다고 아무 방향으로나 전부 발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함정들이 앞뒤로 길게 늘어서 옆구리를 적에게 보여주며 싸우는 단종진이 중요했습니다. 줄을 서서 옆으로 쏘면 여러 함정의 화력을 같은 방향으로 활용하기가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T자 전법도 이런 맥락입니다. 적의 진행 방향 앞을 가로질러 자리 잡으면, 이쪽은 측면 화력을 활용하면서 적 선두에 공격을 집중하기 쉬워집니다. 반대로 접근하는 쪽은 앞쪽으로 쏠 수 있는 함포와 사격 시야에 제약을 받습니다.

다만 바다에 T자를 그렸다고 상대 함대가 자동으로 폭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도 움직이고 포도 쏩니다. 실제 전투는 교과서 그림처럼 얌전히 멈춰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도고의 변침 역시 위험이 있었습니다. 뒤따르는 함정들이 앞선 배가 돌아간 부근을 차례로 지나야 했으니 러시아군에게 사격 기회를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함대도 구경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포문을 열었고 일본 기함 미카사에도 명중탄을 냈습니다. 도거뱅크에서 어선이나 쏘던 사람들이라고 정작 진짜 적함은 한 발도 못 맞힌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함대는 변침을 이어가며 전투를 계속했고, 러시아 기함 크냐지 수보로프에는 일본 함정들의 포격이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무너지는 함대

수보로프는 그냥 앞장서 가는 전함 한 척이 아니었습니다. 로제스트벤스키 제독과 참모들이 타고 함대 전체를 지휘하는 기함이었습니다.

그런 배에 포탄이 연이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전함의 두꺼운 장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배가 가라앉지 않는 것과 정상적으로 싸울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 연합함대가 주로 사용했던 포탄은 대함 고폭탄이었는데 이는 대함 철갑탄에 비해 관통력은

떨어지기때문에 적함을 직접 격침시키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미카사
요코스카 해상자위대 기지에 정박되어 있는 전함 미카사

 

다만 고폭탄은 함선의 구조물에 큰 폭발과 화재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휘부가 탑승해 있는 함교에 고폭탄이 

명중할 경우 지휘부가 몰살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이로 인해 배 의 항해 능력 자체는 멀쩡할자 몰라도 실질적인 교전능력을

잃게 되어 사실상 전력으로 기능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외에도 관측기기가 망가지고 화재와 연기가 시야를 가리면 적을 보고 사격을 지휘하기 어려워집니다. 연락이 끊기면 아래에서는 무슨 명령이 내려왔는지 알 수 없고, 위에서는 아래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기 힘들어집니다.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전함이 물 위에는 멀쩡히 떠 있는데 정작 제대로 보고, 움직이고, 쏘는 일이 하나씩 어려워지는 겁니다.

실제로 함교에 연합함대의 집중사격을 얻어맞은 수보로프에서는 화재가 번지고 조타장치까지 손상됐으며, 원정함대의 총 사령관인로제스트벤스키 제독도 부상을 입었습니다. 결국 기함은 대열에서 이탈했습니다. 

수보로프
제2태평양 함대의 기함 전함 수보로프

 

뒤따르는 배들 입장에서도 문제였습니다. 앞장서던 기함이 방향을 바꿨는데 그것이 명령에 따른 기동인지, 얻어맞아서 제멋대로 도는 것인지부터 구분해야 했습니다.

포탄이 쏟아지고 연기가 뒤덮인 바다에서 깃발을 확인하며 그 판단을 내려야 했으니, 평소 손발이 잘 맞던 함대라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투 초반 집중 공격을 받은 오슬랴뱌는 침몰했고, 러시아 함대는 기함을 잃은 상태에서 전투를 이어갔습니다. 함대 전체를 한꺼번에 움직여 상황을 뒤집기는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고 러시아 함정들이 곧바로 싸움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남은 배들은 북쪽으로 나아가려 했고 일본 함대와 포격전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싸우고 있다는 것과 전세를 되돌리고 있다는 것은 달랐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에는 알렉산드르 3세와 보로디노까지 침몰했습니다. 대열에서 떨어져 나간 수보로프도 끝내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러시아가 극동의 전세를 뒤집겠다며 보낸 신형 전함들은 그렇게 용궁으로 사라져갔습니다.

7개월 동안 고장을 고치고 석탄을 실어가며 여기까지 끌고 온 배들이었습니다. 그 배를 움직이기 위해 기관실에서 버티고 갑판에서 뺑이를 치던 수병들의 노력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출항 과정의 황당한 일화만 보면 웃기는 함대였지만,  마지막까지 웃기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해가 져도 끝나지 않는 전투

어둠이 내려오자 살아남은 러시아 함정들에는 그나마 숨을 돌릴 틈이 생기는 듯했습니다.

낮처럼 멀리서 적을 확인하고 포격하기 어려워졌으니, 어둠 속으로 빠져나가 북쪽으로 향할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군도 러시아 함대를 퇴근시켜줄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구축함과 어뢰정들이 공격에 나섰습니다. 낮에는 대형 함정들의 함포가 문제였다면 밤에는 어둠 속에서 접근하는 작은 함정들과 어뢰를 경계해야 했습니다.

 

낮 동안 얻어맞은 배에서 화재를 끄고 침수를 막으며 항해를 계속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제는 어뢰까지 피해야 했습니다. 함대가 흩어진 상태에서는 서로 보호해주기도 어려웠습니다.

물론 일본의 야간 공격이 전부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둠을 이용해 공격을 피한 러시아 함정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손상된 함정들에 야간 공격까지 더해지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배는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날이 밝은 5월 28일, 네보가토프가 이끌던 잔존 함정들은 다시 일본 주력함대에 붙잡혔습니다. 결국 네보가토프는 항복을 선택했습니다. 오룔과 니콜라이 1세 등 그의 지휘 아래 남아 있던 함정들이 일본군 손에 넘어갔습니다.

니콜라이1세
항복을 위해 전함 니콜라이1세호에서 이함 중인 네보가토프 제독

 

전체 러시아 함정이 그 자리에서 일제히 항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로 떨어진 배들은 저마다 도주하거나 저항했고 중립항으로 피한 배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함대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다는 작전은 이미 실패로 끝난 뒤였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것은 알마즈와 구축함 두 척뿐이었습니다. 반면 일본 연합함대가 이 해전에서 잃은 함정은 어뢰정 세 척이었고 전함과 장갑순양함은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양측의 손실은 같은 전투의 결과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졌습니다. 

 

쓰시마 해전이 불러온 나비효과

쓰시마에서의 패배가 러시아라는 나라 전체의 군사력을 없애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육군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전쟁을 더 끌고 가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보낸 함대가 이런 식으로 사라진 뒤에도 계속 싸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일본 역시 겉으로 보이는 승전 소식만큼 속사정이 넉넉하지는 않았습니다. 전쟁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돈과 부담이 쌓여 있었고 무작정 장기전을 벌일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두 나라는 미국의 중재 아래 협상에 들어갔고 1905년 9월 포츠머스조약으로 전쟁을 끝냈습니다. 문제는 이 승리가 일본에 영토와 국제적 위상만 남긴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럽의 강대국 러시아를 상대로 이겼다는 경험은 군사력으로 국익을 넓힐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웠습니다. 정작 정부는 전쟁을 더 끌고 가기 버거워 협상에 나섰지만, 승전 소식을 들어온 대중은 그보다 더 큰 보상을 기대했습니다. 전쟁을 끝낸 정부가 오히려 욕을 먹은 히비야 소요는 그 간극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이 승리 하나로 일본이 곧바로 군국주의 국가가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돌이켜보면 러일전쟁에서 거둔 성공은 이후 일본이 군사적 팽창을 거듭하고 군부의 목소리가 커지는 데 하나의 토양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위에 경제위기와 정당정치의 붕괴, 군부의 정치 개입이 겹치면서 일본은 결국 태평양전쟁이라는 파국으로 나아갔습니다. 쓰시마에서 통했던 승리의 방식이 다음 전쟁에서도 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한 번 크게 성공한 나라가 자기 성공을 의심하기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히비야
히비야 소요

 

그렇다고 일본이 얻은 것이 적었던 것은 아닙니다. 러시아는 조약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한 정치·군사·경제적 이익을 인정했

고, 일본은 남사할린과 뤼순을 포함한 요동반도의 조차권 등도 넘겨받았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대목부터 남의 나라 함대가 박살 난 이야기를 느긋하게 구경할 수만은 없게 됩니다. 두 제국이 싸운 뒤 협상장에 앉아 정리한 이해관계 속에 한반도도 들어 있었으니까요.

 

또한 이 해전의 결과로 인해 당사자인 일본을 비롯해 이 해전을 관심있게 연구한 서구 열강국가들에게서도 최신예 전함을 주력으로하는 함대결전사상이 팽배하게 됩니다. 

 

어쨌거나 이 시점에서 일에게 쓰시마는 거대한 승리였고 러시아 해군에는 참담한 패배였습니다. 하지만 그 바다에서 어느 쪽도 지휘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까지 결과가 돌아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함대결전 이상의 사건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2태평양함대의 항해 자체는 분명 대단했습니다.

 

변변한 해외 기지도 없이 수많은 함정을 지구 반 바퀴 너머로 이동시켰고, 온갖 사고와 고장을 겪으면서도 결국 극동까지 도착했습니다. 그 항해를 실제로 해낸 사람들의 수고까지 도거뱅크의 황당한 소동으로 뭉뚱그릴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먼 바다를 건너올 능력과 도착한 뒤 적을 이길 능력은 같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함대를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그 함대가 도착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였습니다.

차르의 명령은 극동까지 도착했지만, 그 명령을 수행하러 떠난 함대는 끝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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