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 [밀리터리 잡설] - 쓰시마 해전 1부 -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러시아 발틱함대
쓰시마 해전 1부 -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러시아 발틱함대
"러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쓰시마 해전과 러시아 발틱함대가 7개월간 지구 반 바퀴를 항해한 끝에 일본 연합함대와 맞붙게 된 과정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해전썰 한번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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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태평양함대의 쉐도우 복싱 도거뱅크 사건
아무튼 지엄하신 차르의 명령을 받들어 보무도 당당하게 출항한 제2태평양함대였지만, 로제스트벤스키 제독부터 말단 수병들까지 사기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일본이 유럽 해역에 어뢰정을 잠입시켰다는 정체불명의 첩보까지 퍼지면서 함대 전체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는데, 이러한 분위기가 가장 황당한 형태로 폭발한 사건이 바로 도거뱅크 사건이었습니다.

1904년 10월 21일 밤 북해의 도거뱅크 해역에 진입한 러시아 함대는 조업 중이던 영국 트롤어선들을 일본 해군의 어뢰정으로 오인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확인할 생각도 없이 탐조등을 비추고 함포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이 공격으로 영국 어선 크레인호가 침몰하고 어민 2명이 사망했으며 여러 척의 어선이 파손됐습니다.
그런데 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함대가 사방으로 함포를 난사하는 과정에서 같은 함대 소속 순양함 오로라까지 얻어맞았고, 이 아군 오사로 러시아 수병과 군종사제까지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전투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일본 함대와 한바탕 교전을 치렀으니 유럽 열강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러시아 제국 해군으로서는 참 모냥 빠지는 출정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하필 얻어맞은 게 영국 어선이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영국은 러시아의 지속적인 남하정책을 경계하며 중앙아시아와 극동 곳곳에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일본과 영일동맹까지 맺은 상태였으니 러시아 함대가 비무장 영국 어선단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 여론은 당연히 폭발했습니다.
영국 해군은 함정들에 출동 준비를 명령했고 순양함대를 보내 러시아 함대의 이동을 감시했습니다. 자칫하면 일본 함대를 만나기도 전에 영국 해군과 먼저 결전을 벌일 판이었습니다.
물론 전쟁 가능성을 빼고 보더라도 영국을 적으로 돌린 것은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었습니다.
대규모 증기함대를 지구 반 바퀴 너머의 극동까지 이동시키려면 항해 도중 막대한 양의 석탄을 계속 보급받아야 했는데, 전 세계 곳곳의 항구와 해상교통망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영국에 밉보이면 석탄 보급은 고사하고 항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러시아는 국제조사위원회 구성을 받아들였고 피해자들에게 6만6천 파운드를 배상하면서 간신히 사태를 수습했습니다.
모냥이 빠지고 말고를 따질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잘못하면 삔또상한 영국 해군에게 작살나고 극동은 커녕 극락가게 생겼는데 모냥이 대수는 아니었죠.
마다가스카르에서 듣게 된 청천력
어쨌거나 저쨌거나 도거뱅크에서 거하게 사고를 친 제2태평양함대는 다시 극동을 향한 기약 없는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함대는 탕헤르 인근에서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지휘하는 신형 전함 중심의 주력부대는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희망봉을 우회했고, 푈케르잠 제독이 지휘하는 구형 전함과 순양함들은 지중해를 거쳐 수에즈운하를 통과했습니다.
제2태평양함대의 주력이었던 보로디급 신형 전함들은 설계 당시 예상보다 흘수가 깊어진 데다 영국의 영향권을 통과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있었기 때문에 훨씬 먼 희망봉 항로를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항로를 선택한 두 부대는 1905년 1월 마다가스카르의 노시베 인근에서 다시 합류했습니다.
지구 반 바퀴에 가까운 거리를 돌아온 함대가 무사히 한자리에 모였으니 눈물겨운 상봉이라고 할 만했지만, 정작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환영식이 아니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바로 뤼순이 일본군에게 함락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애초 제2태평양함대의 임무는 뤼순에 주둔하고 있던 제1태평양함대와 합류해 일본 연합함대를 상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1태평양함대는 황해해전에서 블라디보스토크 돌파에 실패한 뒤 다시 뤼순항에 갇혔고, 일본군이 203고지를 점령한 이후에는 항구 안에 정박한 채로 중포 사격을 얻어맞으며 주력함 대부분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1905년 1월 2일 뤼순 요새까지 항복하면서 제2태평양함대가 구원하고 합류해야 할 대상은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왔더니 구하러 가던 함대는 이미 박살 났고 목적지까지 일본군 손에 넘어간 겁니다.
그렇다고 러시아 정부가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2태평양함대의 새로운 목적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변경됐고 로제스트벤스키는 장기간 항해로 지칠 대로 지친 자신의 함대만으로 일본 연합함대를 돌파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원래는 제1태평양함대와 합류해 전력을 보강한 뒤 일본 해군을 상대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정작 제1태평양함대가 사라지고 나니 그냥 혼자 가서 일본 해군을 때려잡으라는 식으로 임무가 바뀐 셈입니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출항시킨 함대를 이제 와서 불러들일 수는 없었겠지만 정작 일본 연합함대의 지휘관 도고 제독과 캐삭빵을 해야 하는 로제스트벤스키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제국 정부는 안 그래도 우울해하던 로제스트벤스키를 위해 아주 특별한 선물까지 추가로 준비해두고 있었습니다.
추가로 합류한 아픈 손가락들
뤼순이 함락되자 러시아 정부는 제2태평양함대를 불러들이는 대신 발트해에 남아 있던 군함들을 긁어모아 추가파견을 결정했는데 이게 바로 네보가토프 제독이 지휘한 제3태평양함대였습니다.
제3태평양함대는 구형 전함 임페라토르 니콜라이 1세와 소형 해방전함 (해안방어용 연안함) 3척, 취역한 지 20년이 넘은장갑순양함 블라디미르 모노마흐 등을 주력으로 편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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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만 놓고 보면 전함급 함정이 네 척이나 추가됐으니 제법 든든한 증원군처럼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함정들 대부분은 제2태평양함대를 처음 편성할 때조차 성능과 상태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외됐던 배들이었습니다.
물론 대구경 함포를 갖추고 있었으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철덩어리는 아니었습니다.
네보가토프 역시 여러 제독이 맡기를 꺼렸던 지휘를 받아들여 노후 함정들을 이끌고 수에즈운하와 인도양을 통과해 불과 석 달 만에 극동까지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원양항해를 완주할 수 있다는 것과 실제 함대결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제2태평양함대와 제3태평양함대는 함정의 속력과 무장, 승조원의 훈련 수준이 제각각이었고 서로 함께 기동하거나 싸워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이미 제2태평양함대에도 느린 수송선과 구식 함정들이 잔뜩 섞여 있던 만큼 로제스트벤스키는 제3태평양함대의 파견을 처음부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 아픈 손가락을 다섯 개쯤 더 붙여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어쨌거나 1905년 2월 중순 출항한 제3태평양함대는 수에즈운하와 인도양을 거쳐 제2태평양함대의 뒤를 쫓았습니다.
그동안 제2태평양함대는 재집결과 석탄 보급, 고장 수리와 훈련을 위해 마다가스카르에서 약 두 달을 보냈습니다.
제2태평양함대는 제3태평양함대와의 기동훈련등은 해보지도 못한채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국 3월 중순 마다가스카르를 떠나 인도양을 횡단했고, 4월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도착했습니다.
로제스트벤스키는 그대로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하고 싶었지만 석탄 보급 문제와 본국의 명령 때문에 결국 그곳에서 제3태평양함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두 함대가 마침내 합류한 것은 1905년 5월 초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반퐁만 일대였습니다.
서류상으로는 함대의 숫자가 늘어났지만 두 부대가 하나의 함대로 손발을 맞춰볼 시간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약 2주 뒤면 쓰시마해협으로 돌입할 예정이었기 대문입니다.
그렇게 안 그래도 우울했던 제2태평양함대와 그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었던 제3태평양함대의 환장할 만한 콜라보레이션이 완성됐습니다.
드디어 쓰시마 해협으로
러시아 함대가 마다가스카르와 인도차이나의 열대 바다에서 석탄과 고장, 질병과 씨름하는 동안 일본 연합함대는 자국 기지에서 함정을 수리하고 포술과 함대기동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러시아군에는 고통스러운 지연이었지만 일본군에는 결전을 준비할 금쪽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러시아 함대의 목적지는 블라디보스토크였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항로는 쓰시마해협과 쓰가루해협, 소야해협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석탄과 기관 상태가 좋지 않았던 러시아 함대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항로는 가장 짧은 쓰시마해협이었습니다.
물론 쓰시마해협은 일본 본토와 한반도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고 일본 해군기지와도 가까웠습니다.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함대를 기다리고 있다면 가장 먼저 감시할 곳이기도 했습니다.
로제스트벤스키는 짙은 안개와 야음을 이용해 일본군의 감시망을 피해 해협을 통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수십 척의 전함과 순양함, 수송선과 병원선으로 이뤄진 거대한 함대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좁은 바다를 통과한다는 계획부터가 그다지 현실적이지는 않았습니다.
1905년 5월 27일 새벽 러시아 함대는 짙은 안갯속에서 쓰시마해협으로 진입했습니다.
이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남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7개월 동안 약 3만3천 킬로미터를 항해한 제2태평양함대와 그 뒤를 따라온 제3태평양함대는 영국과의 전쟁 위기와 석탄 부족, 질병과 기관 고장을 견디고 마침내 극동에 도착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함대가 별다른 해외 해군기지도 없이 지구 반 바퀴에 가까운 거리를 항해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마지막으로 쓰시마해협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함대가 그렇게도 피하려 했던 일본의 감시선은 이미 안개 너머에서 이들을 발견한 뒤였습니다.
오전 4시 45분 무렵 일본의 가장순양함 시나노마루는 어둠 속에서 러시아 함대를 발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제독에게도 러시아 함대의 출현을 알리는 무전이 전달됐습니다.
“적함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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