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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잡설

쓰시마 해전 1부 -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러시아 발틱함대

by 미사리 건더기 2026.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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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쓰시마 해전과 러시아 발틱함대가 7개월간

지구 반 바퀴를 항해한 끝에 일본 연합함대와 맞붙게 된 과정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해전썰 한번 풀어볼까 합니다.

오늘 다뤄볼 이야기는 러일전쟁의 승패를 사실상 결정지은 쓰시마 해전입니다.

1905년 5월, 대한해협에서 일본 연합함대와 러시아 제2 태평양함대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근대식 전함들이 대규모로 맞붙은 이 전투에서 러시아 함대는 말 그대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런데 쓰시마 해전이 재미있는 건 전투 자체만이 아닙니다.

러시아 함대가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부터가 상당히 드라마틱 합니다.

 

뤼순항에 갇혀버린 러시아 태평양 함대

1904년 8월 황해해전에서 러시아 제1 태평양함대는 일본 연합함대의 봉쇄를 뚫고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실패합니다.

함대를 지휘하던 빌헬름 비트게프트 제독이 전투 도중 전사했고, 지휘체계가 무너진 러시아 함정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일부 함정은 중립국 항구로 도망가 억류됐고, 나머지는 다시 뤼순항으로 돌아갔습니다.

 

뤼순항으로 돌아간 잔존 함정들은 이후 일본군이 항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고지(203 고지로 이때 러일전쟁

일본군 총사령관 노기 마레스케 장군의 아들도 전투 중 전사합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를 점령하면서 육상에서 쏘아대는 중포의 표적이 됐고, 1904년 말까지 군함 대부분 격침되거나 자침 합니다.

 

당시 서구 열강과 자웅을 겨루던 러시아제국은 변방의 작은 나라로 치부하던 일본이 자국의 태평양 함대를 몰아붙이자

큰 충격에 빠집니다. 실추된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극동의 전세를 뒤집을 새로운 함대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러시아 해군의 주력은 발트해의 발틱함대와 흑해함대, 그리고 극동에 배치된 태평양함대등 총 3개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흑해함대는 오스만제국이 통제하던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극동으로 보낼 수 없었고, 결국 러시아는 발틱함대에서 함정들을 차출해 ‘제2 태평양함대’로 재편하고,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에게 지휘를 맡깁니다.

로제스트벤스키
제2태평양함대 사령관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

 

지구 반대편으로 출발한 제2태평양함대

제2 태평양함대의 원래 목표는 뤼순항의 제1 태평양함대를 구원하고, 두 함대가 연합해 일본 연합함대와

결전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함대가 인도양에도 도착하기 전인 1905년 1월 뤼순항이 일본군에

함락되면서 원래 계획은 완전히 틀어집니다.

203고지
러일전쟁의 분수령이된 203고지 전투를 묘사한 목판화

 

구해줄 제1 태평양함대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부는 원정을 중단하지 않았고, 제2 태평양함대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동해

그곳을 새로운 작전기지로 삼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로제스트벤스키 입장에서는 거의 가서 죽으라는 얘기나 진배없었는데 그 이유는 함대의 구성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2 태평양함대의 주력은 최신예 보로디노급 전함 4척을 비롯한 전함 7척, 순양함 7척, 구축함 9척과

다수의 수송선·공작선·병원선·급탄선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함대의 핵심은 로제스트벤스키의 기함인

크냐지 수보로프를 비롯해 임페라토르 알렉산드르 3세, 보로디노, 오룔 등 보로디노급 전함 4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취역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구식 전함과 순양함, 속도가 느린 보조함정들이 줄줄이 따라붙었습니다.

보로디노
당시 제정러시아의 최신예 전함인 보로디노급 전함 slava

 

겉으로만 보면 거대한 함대였지만 실제로는 성능도 속도도 제각각인 배들을 한데 묶어놓은 해상판 잡동사니

종합선물세트에 가까웠습니다. 실제로 당시 발틱함대의 승조원들은 자신들의 함정을 일컬어 '자동침몰함', '다리미' 등의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대다수의 함정들의 상태는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당시 부족한 제정러시아의 재정상황으로 인해 수병들은 충분한 훈련 역시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이러한 잡다한 함선들과 충분히 훈련을 받지 못한 수병로 함대를 가득 채운채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 했습니다. 

 

함대는 1904년 10월 15일 러시아령 리바우항, 현재 라트비아의 리예파야를 떠나 극동으로 출발합니다.

함대의 목표는 항로는 북해와 대서양을 지나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진입한 뒤,

말라카해협과 남중국해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로씨아
러시아제국 장갑순양함 '로씨아'

 

 

총 항해 거리는 약 1만 8,000해리,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3만 3,000킬로미터가 넘었습니다.

지구 둘레가 약 4만 킬로미터이니, 거의 지구 한 바퀴에 가까운 거리를 함대 전체가 이동해야 했던 셈입니다.

예상 항해기간은 무려 7개월이었습니다. 

 

그것도 해외 군항이나 안정적인 보급망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전함들은 항속거리가 짧았고, 함대는 항해 내내 석탄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 급탄선에 의존해야 했을 뿐 아니라

중간중간에 항구에 기항하여 석탄을 수급받아야 했는데 당시 중립국 항구에 기항하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지라 연료의 보충 역시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러시아 해군 역사상 가장 길고도 기묘한 원정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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