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항명은 즉결처분이다!
영화 고지전을 보면 어떤 무지랭이 장교가 자신의 부하에게 '전시 항명은 즉결처분이다' 라고 일갈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있습니다.
근데 그게 진짜일까요? 진짜면 애초에 이 글을 쓰지도 않았겠죠. (.............)
그놈의 즉결처분 운운은 군법을 잘 모르는 민간인은 물론이요, 심지어 군대에서 간부라는 작자들도 흔히 내뱉는 단어이긴 한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딴거 없음'
입니다. 그럼애초에 저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가 왜 널리 퍼졌을까요?
사실 아예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실제로 시행된적이 있으니까요. 근데 그게 6.25때 1950년 7월부터 딱1년 동안 잠시 시행되다가 51년에 폐지된 제도인데 폐지된 지 무려 70년이 넘은 시점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당시 기준으로도 임팩트가 크긴 컸나 봅니다.
애초에 아군이 아군을 정당한 재판절차 없이 죽일 수 있다는 구 일본제국군스러운 명령을 내린 건 친일부역자이자 국민방위군 사건의 주역인 정일권 당시 육군참모총장입니다. (이래서 출신성분은 못 속입니다.)
북한과 전쟁이 터지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쳐드시겠다던 당시 국방장관이하 똥별들이 싸지른 만행과 삽질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풀어보겠고 오늘은 그 악명 높은 육군훈령 제12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똥별들의 무능함이 빚은 참사
▹ 육군훈령 제12호
육군본부, 경북 대구, 단기 4283년 7월 25일 11:00
强有力한 공세이전을 단행함에 제하여 각급 지도관은 左記 사항을 隷下 부대 장병에게 철저히 주지시켜 고병과 신병의 통합지휘에 만유감 없기를 期할 事.
記
1. 신병에 대한 전투간의 교육을 계속 실시하라.
2. 명령 없이 전장 이탈할 시의 직결처분권을 분대장급 이상에게 7월 26일 0시부터 부여한다.
附言
제2항의 전장 이탈이라 함은 직장상관의 명령한 지점에서 명령 없이 후퇴함과 명령한 작전행동을 의식적으로 불이행함을 말함.
총참모장 육군소장 丁一權
분대장급 이상 지휘권한을 가진 자에게 적전 전장이탈 시 즉결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내용의 훈령입니다.
법알못인지라 저딴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여 놓은 훈령 따위가 군형법에 우선하는 법적효력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여부를 알 수는 없으나 아무튼 그 유명한 스탈린 명령 227호급 명령이 내려졌던 건 분명한 사실이고, 실제로 저 훈령에 근거해 수많은 장병 및 장교들이 즉결처분당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여러 가지 사례가 검색되는데, 자신이 탑승한 차량 앞에서 걸리적거린다고 병사를 사살하거나(심지어 죽어가던 병사에게 직접 확인사살까지 했음) 사소한 말다툼을 벌였다고 부하를 사살하거나 훈련 중 자세가 불량하다고 사살하는 등 이 정도면 프래깅 (fragging)당해도 할 말 없을 갖가지 이유들로 애꿎은 병사들을 막무가내로 살해하는 개 막장 사태가 벌어집니다.
(프래깅(fragging)이라 함은 상관살해를 의미하는 미군들의 은어인데 전투 중 정신없는 와중에 앙심을 품은 병사가 상관에게 수류탄을 투척하거나 심지어 옷 안에 수류탄을 넣는 등(!)의 방법으로 상관을 살해했던 것에서 기인합니다. 물론 수류탄이 아니라 총으로도 잘만 쐈습니다. 베트남전 기간 중 발생한 약 800건의 사망사건이 프래깅으로 의심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아무튼, 훈령 제12호로 인해 갖가지 막장 이벤트가 줄줄이 터지자 국군도 아 이건 좀.... 싶었던지 즉결처분 제도가 시행된 지 고작1년 만에 전격적으로 즉결처분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릅니다.
즉결처분 폐지 벌써 70년
<陸本訓令 제191호 直決처분권 취소에 관한 건>
육본훈령 제191호
육군본부, 대구, 단기 4284년 7월 6일 12시
訓令
직결처분권 취소에 관한 건
단기 4283년 7월 25일 12시 육군훈령 제12호 훈령으로 명령 없이 전장 이탈할 시의 직결처분권을 분대장급 이상에게 단기 4283년 7월 26일 0시부터 부여하였으며 전장 이탈을 묵과한 지휘관은 전장 이탈과 동일한 죄과로 처단하게 되었다.
이는 6·25 직후 我국군이 38선에서 적에게 돌파당하자 병력, 장비에 너무 차이가 많음을 알매 見敵·후퇴·분산·혼란의 상태를 연출하여 국군으로서의 국난에 대한 자각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신뢰조차 잃게 된 위기에 전국을 수습하고 군의 단결을 조성하기 위한 비상조치로 如此 훈령을 발포한 것이나 역전 1주년을 경과한 금일 我국군은 질적으로나 군기면에 있어서나 작전행동에 있어서 당시의 상태와는 괄목할만한 발전 향상을 보게 되었으며 민주주의국가의 국군으로서 엄연한 군법이 확립되어 있는 이상 如斯한 직결처분권을 행사할 바 없으므로 玆에 이 직결처분권을 단기 4284년 7월 10일 0시부터 취소한다.
각급 지휘관은 부하에 대하여 骨肉之情으로 대하는 동시 태연 침착 치열한 책임감을 공지하며 상시 진두지휘함으로써 혁혁 상승의 국군 전통을 조성하기에 각별 유의할 것이며, 국가로 하여금 여차 불명예한 권한을 재발 동하지 않게 하도록 정진할 것을 시달한다.
육군총참모장 육군대장 李鍾贊
하달법:인쇄 배포
배포선
국방부 2부, 각 군단 1부, 각 사단 1부, 각 연대 1부, 憲司 1부, 砲司 1부, 인사·정보·군수·高副·통신·공병·병기·병참·의무 각 1부, 보관 2부
따라서 21세기인 현재 만약에 전쟁이 발발한다고 했을 때 하급지휘관은 고사하고 야전군 사령관이라 할지라도 재판 없는 즉결처분은 처분이 아니라 그냥 살인죄로 처벌받습니다.그게 당연한 거고 문명화된 국가의 군대입니다. 애초에 육군훈령 제191호에서도 말미에나마 ‘불명예한 권한’이라고 못을 박아놨습니다. 저 표현이 무려 1951년에 나온 표현입니다. 근데 21세 기하고도 벌써 24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즉결처분 운운하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일까요
커버를 칠래도 칠 수가 없는 즉결처분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애초에 전황이 얼마나 급박했으면 그랬겠냐', '당시 패주 중인 국군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등등..
그런데 위에서 적어놨지만 '전쟁 터지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게 징병돼서 끌려온 이름 모를 병사들이었나요?
애초에 개전 3일 만에 지리멸렬하게 된 게 어떤 높으신 장군님 길 막았다고 정당한 임무수행 중에 억울하게 사살당한 병사 잘못일까요?
애초에 그런 일 없게 나라 잘 지키라고 별 달아주고 밑에 수많은 부하들 딸려주고 장교랍시고 갖가지 대우해 줬던 거 아닌가요? 애초에 직무유기로 처벌받았어야 할 인간들이 지휘관이랍시고 애먼 병사들 쏴 죽여댈 수 있었던 게 그 잘난 즉결처분권한 때문이었습니다.
즉결처분은 비장미 넘치는 한국군의 전통이 아니라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인명경시사상의 끝을 달렸던, 당시 기준으로도 문명국 취급 못받던 미개한 구 일본제국군의 똥군기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친일부역자 출신 장성들이 만들어낸 비극이자 대한민국 국군의 흑역사 중 흑역사입니다.
따라서 사석에서든 아니면 예비군 훈련장에서든 누군가 어디서 어설프게 주워듣고 즉결처분 운운하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지금 21세기라고 정신 좀 차리라고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상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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