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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8 - [잡담] - GOP 군생활 시절 썰 4편
만능인재 북한군
오래간만에 보는 특이동향을 보고 침을 꼴딱 꼴딱 삼키고 있는데 트럭에서 내린 병력들 손에 뭔가가 들려있었습니다.
총은 아닌데 뭘까 하고 자세히 보니 낫(?)입니다.
네 GP옆에 있는 논에 추수를 하러 내려온 듯합니다. (......) 그렇게 3열 횡대로 도열한 북한군은 일제히 논으로 달려가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낫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한국 민통선 지역에서는 콤바인 한두대로 넓은 논을 돌아다니면서 추수, 탈곡까지 원스톱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콤바인 같은 고급농기계가 없는 북한은 인력으로 추수를 하고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건설, 경계, 농사, 목축까지 모든 일을 다 해냅니다. 정말 일당백의 정예 민경대대 답습니다. 이쯤 되니 북한군이 측은해지기 시작합니다.
한나절이 지나자 논 옆에 산더미 같이 벼가 쌓인게 보입니다. 그리고 추수가 끝난 논에 다시 엎드려 뭔가를 열심히 줍고 있습니다. 그 명화에서나 보던 이삭 줍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짜 알뜰합니다. 부자 될 듯싶습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이었습니다. 동틀 녘 때쯤 왔다 갔던 트럭한대가 또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려옵니다. 근데 얼핏 봐도 벼의 부피가 엄청나서 트럭하나에 다 못 실을 것 같은 사이즈입니다. 한대가 왔다 갔다 하려나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트럭에서 뭐를 계속 내리기 시작합니다.
네 북한군은 무엇을 상상하든 늘 그 이상입니다. 차에서 내린 물건은 전래동화에서나 보던 지게입니다. (............) 2~30명이 일제히 지게에 볏단을 쌓아 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지게한테 미안해질 정도로 볏단을 수북이 쌓고 한 명씩 터덜터덜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게를 진 병력이 다 사라지고 나니 어느새 사방에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에 호롱불 쓰던 북한
당시 북한군 GP 후방에는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해가 지고 나면 몇십 가구가 사는 마을에 불빛 한 점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야간투시경으로 유심히 마을을 살펴보니 집집마다 자그마한 불빛이 일렁이는 게 보였습니다. 아마도 호롱불(?) 인 듯싶었습니다. 21세기에 아직도 호롱불 키고 사는 나라가 내가 서있는 지척에 있는 곳이라니 뭔가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인적이 드문 민통선 지역이라도 한국섹터는 민간, 군용 차량이 하루에도 수십대씩 왕래하고 밤에 뒤를 돌아보면 멀리 보이는 파주, 연천시가지는 항상 불야성인데 북한섹터는 차량 한 대만 나타나도 특이상황이고 밤이면 칠흑처럼 어두운 모습이
너무도 대비됐습니다. 마치 북한의 현 상황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제가 복무하던 때 북한군은 물자부족으로 보통 1년에 2~3발 정도 실사격 훈련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저희 부대는 1주일에 75발씩 실사격 훈련을 했습니다. GOP에서의 사격훈련은 FEBA지역 사격훈련과 다릅니다.
근무지역 특성상 단발로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사격할 확률보다는 갑작스럽게 거수자와 조우했을 때 제압해야 할 확률이 높은 관계로 대략 10 ~ 15미터 거리에서 속사 또는 점사로 단 시간에 많은 화력을 쏟아붓는 즉각 조치 사격 훈련을 받습니다.
매주 2회가량 2개 분대씩 이런 즉각 조치 사격 훈련을 받았는데 GOP특성상 별도로 사격장이 있는 게 아니라 막사 바로 옆에 간이 사격장을 만들어 두고 사격훈련을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막사 바로 옆에서 들리는 총성 때문에 잠을 설쳤으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나중에는 다다다다 하는 소총 연사음을 자장가 삼아 잠에 들곤 했습니다.
반면 북한의 경우 제가 10개월 동안 GOP에서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사격훈련 하는 모습을 보거나 총성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들리는 총성이라고는 한국군이 사격훈련하는 소리가 전부였습니다. 최전방에 근무하는 병사들이 1년에 사격훈련 한번 하기도 힘든 게 북한군의 현실이었습니다.
북한군의 강인한 정신력
물론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주적을 근거 없이 평가절하하는 것은 분명히 안 돼지만, 10개월간 매일 직접 보고 느낀 북한군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과도하게 두려워할 대상은 아니다는 점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고 강군인 한국군도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산적해 있는데, 그냥 보이는 모습마저 군대는커녕 민병대 수준도 안 돼 보이는 북한군이라면 내부적인 문제는 안 봐도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시절 정신교육시간에 어떤 여자분이 강사로 나와 본인은 북한군 보위부 출신이고 2000년대 초반 탈북한 장교인데, 북한군이 낙후된 것은 사실이지만 정신력은 남한군이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다들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북한군한테 질 수밖에 없다. 북한군은 총 폭탄 정신으로 강인하게 무장된 군대다라며 침을 튀기며 설명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총폭탄 정신으로 무장된 북한군 그것도 보위부 출신 장교가 탈북했다는 것 자체가 강인한 정신력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한국군이 GOP에서 밀조형식으로 초소에서 근무를 서는 것과 달리 별도의 GOP가 없는 북한군은 해가지면 GP에서 나와
삼삼오오 짝을지어 잠복호에서 매복근무를 섭니다. 제가 근무하던 시절에는 2인 1조로 PVS-7이라는 3세대 야간투시경을 지급했었고, 고가초소 부근에서는 TOD라는 열영상 장비로 북한군을 감시했었습니다. 열영상장비인만큼 열원이 있으면 하얀 화면에 검은색으로 형태가 감지되는 장비인데, 사각지대가 아니라면 북한군의 일거수 일투족 감시가 가능했습니다.
언젠가 한겨울에 야간 순찰조에 편성이 되어 TOD실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주간에도 경계근무를 제대로 안서는 북한군이 야간에는 어떨까 호기심이 생겨 유심히 모니터를 바라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잠복호에 들어간 북한군은 옹기종기 모여 웅크린 채 총을 벽에 세워두고 바닥을 보고 있습니다. 네 그냥 자는 겁니다. (.......)
총 폭탄 정신으로 무장했는데 무장만 한 모양입니다. 의지는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곤히 잠든 북한군들 위로 둥근달이 두둥실 떠있고 휴전선의 무심한 하루는 또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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