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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왜 우리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착각할까 – 난쟁이와 거인의 진짜 의미

by 미사리 건더기 2025.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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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지식의 축적, 더닝크루거 효과, 지적 허영과 자기 객관화에 대해 풀어보는 생각노트."

 

난쟁이가 뭐 어쨌다고?

 

 

이 격언에 대한 가장 초기의 문서화된 증거는 1123년 윌리엄 오브 콘체스 의 프리시아누스 의 문법학 제도 에 대한 주석 에서 나타난다 . [ 4 ] 프리시아누스가 quanto juniores, tanto perspicaiores (젊은이들은 단순히 더 예리하게 볼 수 있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윌리엄은 다음과 같이 썼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직접 쓴 책만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모든 책, 더 나아가 태초부터 우리 시대까지 쓰여진 모든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은 난쟁이와 같습니다. 난쟁이는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키가 아니라 그것을 든 사람의 키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현대인]는 고대인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의 글은 비록 소박하지만 그들의 위대한 작품들에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 5 ]

 
위키피디아의 설명입니다. 
 
사실 고대까지는 잘 모르겠고, 우리에게는 1675년 아이작 뉴튼이 라이벌에게 썼다는 편지에서 ' 제가 더 깊이 있게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섰기 때문입니다.' 라고 적은 덕에 유명해진 말입니다.
 
이말인 즉슨,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 그 어느 누구도 선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는 비단 과학적 발견뿐이 아닌 철학, 사회학, 인문학을 통틀어 인류가 이룩한 모든 지적 창작물에 적용할 수 있는 명제 이기도 합니다. 
 
약 20만년전 출현한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현생인류와 뇌 용적과 지능에서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일까요? 아래 그래프를 참고해 봅시다.
 

기술발전 그래프
1775년에 외계인을 납치 했다고?

 
 
기원전 8천년전부터 인류의 기술발전 척도를 그래프로 표시한 그림입니다. 약 8천 년 동안 큰 변곡점 없이 수평선을 그리던 인류의 기술발전은 1775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1775년에 외계인이라도 납치해서 고문한 결과일까요? 그럴리가 없죠. 수천 년간 누적되어 온 인류지식의 축적물이 쌓이고 쌓여 
마침 기술발전에 적합한 사회구조와 접촉한 것을 계기로 산업혁명이라는 기술적 빅뱅이 일어났다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할 겁니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는게 제일 무섭습니다. 

 

수십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본 수많은 사람 중에 '더닝 크루거 효과'의 모범적 사례에 해당하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굳이 뭐 어려운말 안 써도 우리나라 속담에도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격언이 있죠 
 
 

더닝크루거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격언의 시각화

 
 
어설프게 알수록 자신감이 더 커지다가 학습할 수록 그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그 자신감 하락을 극복하고 더 노력했을 때 마침내 전문가의 타이틀을 얻게 된다는 논리죠. 물론 저 역시 현재 우매함의 정점(?)에 서있긴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아는 게 없구나 하는 점은 매 순간 모든 분야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고 심지어 그 분야로 돈을 버는 프로라고 할지라도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고 낙오합니다.

하물며, 책 몇권 읽었다고 해당 분야에 통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심지어 그 알량한 책 몇 권 조차 읽지 않고 인터넷에 떠도는 글 몇 자 읽고 세상이 치 통달한 고승 흉내 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기준과 가치관은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스스로 사고한 결과라는 착각에 빠져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남들과는 전혀 다른 고유한 기준과 객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인이 그만큼 무지하고 아는게 없다는 방증에 다름 아닙니다. 내가 생각한 그리고 앞으로 생각할 모든 것은 이미 과거에 누군가가 생각했거나 또는 지금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제 뇌피셜 아니냐고요?

 

네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인류 문명의 중요한 변곡점을 찍는 이벤트는 전혀 교류가 없는 지역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었다는게 그 증거입니다. 이는 '문명의 평행발전 이론'이라고도 불리는데 문명의 전파를 설명하는 '확산이론'도 분명 존재하지만 문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는 평행발전 이론이 더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테슬라나 아인슈타인, 찰스 다윈 같은 인류 문명의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선구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나 제가 그 선구자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건 저도 여러분도 모두 인지하고 있습니다. (.........)

 

지적허영과 자기 객관화

 

하물며 본인의 지적 능력에 대한 진지한 객관화, 성찰까지 결여된 사람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죠. 근거 없는 지적 우월감을 뽐내며 철학적 사유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아닌 단순한 현학성을 뽐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일컬어 우리는 '지적 허영'이라고 부릅니다. 

 

철학은 어떻게 살것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 실존적 주제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찰을 논리적으로 정리한 학문체계의 한 가지입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어떻고 쇼펜하우어의 염세론적 사회관이 어떻고 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다못해 길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붙잡고 인생이 무엇인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여쭤봐도 모두 저마다의 철학이 있고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걸 학술적으로 풀어내느냐 아니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아는가' 라고 의역되어 많이 쓰이곤 하죠.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라는 진부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반성과 자기성찰.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자기 객관화 과정은 분명 지능의 영역이지 겸손이라는 미덕의 영역이 아닙니다.

 

지적허영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근거 없이 타인의 가치관을 폄훼하고 도덕적 판단의 영역과 가치판단의 영역의 차이조차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남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세태가 안타까워서 끄적여본 잡설이었습니다. 

 

 

이상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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