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가 갑옷 입고 카타나 휘두르는 멋은 인정. 하지만 라스트 사무라이는 역사도, 고증도, 일본 근대사도 죄다 비틀어버린 판타지 영화입니다. 왜 그런지 조목조목 까봅니다."
사무라이 칼싸움 쩌는 영화
오늘 리뷰해볼 영화는 오래간만에 넷플릭스에 복귀한 2003년 작 라스트 사무라이 입니다.
톰 크루즈 형님이 당세구족 갑옷 입고 카타나 들고 설쳐대는 영화로서 무려 20년 전에 친구와 함께 손잡고
일산 롯데시네마에서 관람한 추억이 있는 영화죠. 영화 자체는 혼돈의 카오스지만 그래도 전투씬은 재밌게 본 기억이 있어
얼마 전 넷플릭스로 재관람한 후기를 적어 볼까 합니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본 영화는 19세기 메이지 유신 직후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영화로서 사무라이 칼싸움 구경이 백미인 영화입니다. 단, 그 판타지라는 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법사, 기사, 도둑 이런 직업이 나오는 판타지가 아니라,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지극히 동양 판타지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이라고도 하죠.
영화에서 가장 고증에 부합하는 장면은 개틀링 앞에 개돌하다가 전멸하는 기병대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그 장면도 진지빨고 까려면 충분히 깔 수 있지만...)
각설하고 본 영화의 문제점이 뭔지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진부한 플롯과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역사적 고증과는 거리가 먼 줄거리, 판타지에 가까운 전투장면, 동양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성적대상화 등입니다.
진부한 플롯과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본 영화는 90년대 영화인 모히칸족의 최후를 보셨다면 기시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줄거리가 유사하다 못해 똑같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집단에 외부인이 들어와 그들에게 감화되어 그 집단에 동화된다는 스토리는 이미 2003년에도
진부할 정도로 여러 매체에서 많이 우려먹은 플롯입니다. 그리고 그 집단은 외부인의 시각으로 타자화 되고, 관찰의 대상이 되며 철저히 이상적인 모습만 보여줍니다. 서양인의 동양에 대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이죠. 동양은 때 묻지 않고, 치유의 주체이며, 지극히 신비롭습니다. 서양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 평범한 객체고 동양은 이와 정반대 되는 관념적이고 비일상적인 객체로서만 존재합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많이 언급되던 GDP최저 국가인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행복도가 세계 1위라며, 물질적인 게 다가 아니다 운운하던 헛소리와 일맥상통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당연히 방글라데시 사람들도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역사적 고증과는 거리가 먼 줄거리
영화 줄거리의 큰 뼈대는 '매국노 유신 세력'과 '존왕양이'를 내세우는 사무라이 세력의 갈등입니다. 이건 일본 역사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봤다면 헛웃음이 나올만한 부분인데, 가마쿠라 막부 이후 에도 막부 시기까지 약 600년 간 일본의 실권은 막부에게 있었으며, 천황은 아무런 실권이 없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대정봉환과 폐번치현이 완료되고 나서야 덴노가 일본의 최고 권력자로 복권하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쇼군과 막부의 수호자 역할을 했던 사무라이들은 천황을 완전히 '뒷방 늙은이 취급' 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선악구도를 만들기 위해 뜬금없이 유신세력을 매국노 간신, 막부세력을 천하의 충신 취급하는 혼돈의 카오스를 보여줍니다.

또 영화의 모티브는 세이난 전쟁이라고 하는데 차라리 보신전쟁을 모티브로 따왔다면 모를까 이때는 사무라이들도 정부군과 마찬가지로 총 들고 싸웠습니다. 당시 양측 사상자 비율을 보면 냉병기에 의한 사상자 비율은 고작 10%도 채 안되고 나머지는 전부 총과 대포에 맞아 죽었다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또 당시 정부군은 이미 서양식 전술과 무기에 대해 잘 훈련된 군대로 영화초반에서처럼 총도 제대로 못 다루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보신전쟁은 대놓고 덴노에게 권력주기 싫어서 막부세력이 일으킨 전쟁이라 이걸 배경으로 하는 것도 코미디긴 합니다. 이래저래 답이 없을 수밖에 없는 줄거리(......)

그리고 와패니즘의 끝을 달리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기껏 잠입에 성공한 검은 두건 쓴 닌자들이 무려 사무라이 본진에서 칼 들고 설치다가 몰살당하는 장면에서 정점을 찍습니다.(닌자 1인당 콜트 SAA 두 자루 씩만 들고 있었으면 암살 성공 했을 텐데)
그리고 당연히 사무라이들이 일당백의 카타나 고수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정부군이 똑같은 사무라이 출신들을 모아 창설했던 '경찰 발도대' 의 활약 같은 건 전혀 안 나옵니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 벚꽃이 흩날리는 와중에 행해지는 낭만적인 할복자살이 실상 에도시대에 이르러는 완전히 사라진 구시대의 풍습이었다는 점까지 고려해 보면 이영화는 역사물을 가장한 전형적인 판타지 영화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라이, 닌자, 할복자살의 완벽한 와패니즘 삼위일체)
동양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서양인의 동양여성에 대한 맹목적인 성적판타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얌전하고 순종적이나 성적으로는 개방적'인 이미지의 결정체가 바로 카츠모토의 여동생인 타카 입니다. 동양인 여성은 백인남성에게 한없이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하며 정신과 육체의 피난처로 기능합니다. 설령 남편을 죽인 원수라고 하더라도 가문의 수장인 오빠가 지시하면 말없이 그 원수의 시중을 들고 결국 사랑에까지 빠지게 된다는 설정은 실소만 자아냅니다. 남편을 죽인 원수에게 자신의 갑옷을 손수 입혀주며 원수의 출전을 걱정하는 아내를 본다면 당사자는 어떤 심정일까요. 하지만 본 영화에서는 그런 상식적인 고민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 여자가 정상적이고 평범한 백인 여자가 아니라 신비롭고 몽환적인 동양의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그래서 이거 보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하실 수도 있을 텐데 걍 뇌 빼고 보면 재밌습니다. 임진왜란의 원죄 때문에 한국에서는 당세구족 입고 챙챙챙 칼싸움하는 사무라이 영화 보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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