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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

미드웨이는 미국의 승리가 아니라 일본의 패착이었다 – 제2차 세계대전, 잘못 알려진 10가지 역사 논쟁 (8편) 下

by 미사리 건더기 2025.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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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은 미국의 압승이 아니라 일본의 전략 오류, 정보 실패, 그리고 운명의 10시 22분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항공모함 4척이 단 5분 만에 침몰한 이유를 전투 경과와 함께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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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 경과

 

일본 제1기동함대는 일단 미드웨이 북서쪽 약 440km 근방까지 접근하자 폭격대를 발진시켜 미드웨이 방어시설 및
전략거점에 대한 맹폭을 실시하는 한편 색적기를 발진시켜 근처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미 태평양 함대를 찾아 나섭니다.

색적기는 총 7대를 발진시켰으며 색적대는 태평양 함대를 찾을 수 없다고 보고해 옵니다 그런데 그중 토네 중순양함에서 발진하기로 한 4번 색적기는 출격 중 기계적 결함으로 다른 색적기보다 약 30분 늦게 출발하게 된 것이 운명의 장난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드웨이
태평양 중앙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 미드웨이


한편 태평양 함대도 근처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지점에 색적기를 출격시켜 눈에 불을 켜고 연합함대를 찾고 있던 와중 제1기동함대 소속 항공대 108대 (전투기 36대, 급강하폭격기 36대, 뇌격기 36대)는 미드웨이 섬에 대한 맹폭을 개시합니다.

하지만 태평양함대는 이미 사전감청을 통해 연합함대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고 있었던 것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6월 4일 05:50 마침내 미드웨이섬에서 발진한 카탈리나 색적기가 미드웨이섬 북서쪽에서 약 320km 떨어진 곳에서 기동 중인 연함 함대의 제1기동함대를 먼저 발견하고 즉시 이를 보고, 항공모함 호넷에서 발진한 TBD 데바스테이더 뇌격기 편대가 제1기동함대를 향해 서둘러 날아갑니다. 
 
그럼 이쯤에서 양측의 전력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상전력비교

 

항공전력비교


  
보시다시피 일본 함대의 전력이 미국 태평양 함대의 전력보다 숫적으로 우세했으며, 항공전력은 미국이 다소 앞서나, 항공대 파일럿들의 기량 역시 진주만 공습, 남방작전 등으로 인해 실전경험이 풍부했던 일본 파일럿들의 기량이 미국 파일럿 보다 한수 위였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다시 말해 란체스터의 법칙에 따르면 연함 함대가 태평양 함대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한편 마침내 연합함대의 제1기동함대를 포착한 미군 뇌격기들은 뇌격코스로 진입을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뇌격기는
커다랗고 무거운 어뢰를 장착하고 있었던 관계로 전투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컸고 최고속도 역시 300km/h대로 제대로 된
공중엄호가 없다면 쉽사리 무력화되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뇌격을 위해서는 대체로 함선의 측면을 향해 천천히 저공으로 비행해야 하는데 이때 함선의 집중 대공사격에 직접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당시 기준으로도 뇌격기는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는 항공기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항모 호넷에서 발진한 미 뇌격기 편대(VT-8)는 및  제1기동함대의 상공을 선회하며 초계비행 중이었던 일본 항공대에게 조기 포착되어 출격한 15여 대가 뇌격을 시도하기도 전에 모조리 격추되는 대 참사가 벌어집니다.
 
이어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해 제1기동함대에 들이닥친 뇌격기 편대(VT-6) 역시 일본 항공대에게 대부분 격추되며 시간이 갈수록 전황은 태평양 함대에게 불리하게 전개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역시 제1기동함대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해 출격했던 미국의 돈틀리스 급강하폭격기 편대는 길을 잘못 들어 제1기동함대를 포착하지도 못하고 연료까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자 급박한 상황 속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채 귀환해야 하는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귀환명령을 내리기 직전, 편대장 맥클러스키의 눈에  일본 구축함 한대가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는 것을 포착합니다. 
직감적으로 해당 구축함이 모종의 이유로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본 대로 복귀 중일 것이라는 판단을 한 맥클러스키 편대장은 구름 위에 몸을 숨기고 일본 구축함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미 잠수함 USS 노틸러스를 추격하다 복귀한 구축함(아라시)은 제1기동함대의 본진에 합류했고 이를 본 급강하폭격기 들은 굉음을 내며 제1기동함대의 상공으로 돌입을 개시합니다.
 
한편, 제1기동함대의 미드웨이 공격대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재무장 및 재급유를 위해 제1기동함대로 귀환했고 
공격대 편대장이 미드웨이섬에 대한 2차 공격을 주장. 나구모 주이치도 2차 공격을 결심하고 재무장 및 재급유를 실시하도록 명령합니다. 바로 그때 앞에서 언급한 30분 늦게 발진한 4번 색적기에서 미 태평양 함대를 발견했다는 급보가 날아옵니다. 그러자 나구모 제독은 한창 격납고 안에서 육상기지 타격용 폭탄을 적재 중인 항공기들의 무장을 다시 어뢰 및 대함 폭탄으로 변경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급박한 명령에 제1기동 함대 정비병들은 지상공격을 위해 장착 중이었던 포탄을 제거하고 어뢰와 대함 포탄을 장착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워낙 상황이 급박했던 터라 탈착 한 포탄은 아무렇게나 격납고안을 굴러다녔고 폐쇄방식의 격납고안에는 유증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운명의 10시 22분

 

마침내 맥클러스키 소령이 지휘하는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 편대 37대가 굉음을 내지르며 구름 위에서 나타났고 앞서 미국 뇌격기 편대를 격추시키기 위해 저고도로 내려왔던 일본 요격기들은 아직 함대의 고고도 상공으로 복귀를 하지 않은 상태였을 뿐 아니라 대공화기도 저고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돈틀리스
미드웨이 승리의 주역 SBD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


함대 상공이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빠진 사이 그대로 미군 항공대의 급강하 폭격이 개시 됐습니다. 이윽고 미국 급강하 폭격기에서 이탈한 폭탄들이 하나둘씩 일본 항공모함 갑판에 직격 하기 시작했고 그것으로 제1기동 함대의 운명은 결정됐습니다.

갑판에 폭탄이 명중하자마자 목재로 마감한 얇은 갑판 위를 그대로 관통한 폭탄들이 격납고 안에서 폭발했고, 어뢰, 폭탄, 유증기 등으로 뒤섞여 있던 일본 항공모함 격납고안은 연쇄폭발이 일어나며 불지옥으로 변했습니다. 격납고 엘리베이터와 환기구를 통해 불길이 번지며 항모 내부까지 도달. 탄약고가 유폭을 일으키며 제1기동함대의 항공모함 4척 중 3척(아카기, 카가, 소류)이 순식간에 전투불능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불과 5분 만에 벌어진 대 참사였습니다.

히류
피격후 불타고 있는 제1기동함대 소속 항공모함 히류

 

 

제1기동함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항공모함 히류에서 발진한 일본 항공대는 2차례에 걸친 결사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미 항모

요크타운에 어뢰 3발, 폭탄 2발을 명중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이윽고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에서 발진한 급강하폭격기 편대의 대대적인 반격 끝에 제1기동함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히류 역시 침몰되며 제1기동함대는 사실상 전멸하게 됩니다. 

함재기 및 정예 파일럿 대부분과 금쪽같은 항모 4척을 황망하게 잃게 된 연합함대는 철수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전투결과 양측의 피해는 각각 다음과 같았습니다. 

 

일본 측

 1. 항공모함: 4척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격침

 2. 순양함:1척 (미쿠마) 격침

 3. 순양함:1척 (모가미) 대파

 4 항공기: 250대 격추

 5. 전사/실종: 3,057명

 

미국 측

1. 항공모함: 1척 (요크타운) 격침

2. 구축함: 1척 (해먼) 격침 

3. 항공기: 150대 격추

4. 전사/실종: 307명

 

단순히 수치로만 보면 연합함대의 피해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실질적으로 미드웨이 전투에서 손실한 파일럿들은 정예 중의 정예병들로 항공모함과 함재기들의 손실은 보충할 수 있을지언정 우수한 파일럿들의 손실은 일본에게 있어서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절망적인 타격이었습니다. 

 

요크타운
공습직후 피해복구중인 미국 항공모함 요크타운

 

 

특히 일본군의 특유의 소수정예 엘리트주의로 인해 파일럿 양성에 상식이하의 불필요한 기준을 설정하여 비행과 별 관련도 없는 사소한 이유들(복장불량, 태도불량 등)로 항공학교에서 퇴출시키는 기행을 일삼기 일쑤였습니다. 

 

그 외에도 대부분 국가의 경우 고도로 숙련된 파일럿을 키우는데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감안하여 파일럿은 장교로 임관시키고 애지중지했던 반면, 인명경시의 끝을 달렸던 당시 일본제국은 심지어 파일럿조차도 소모품처럼 취급하여 부사관 병 파일럿이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파일럿의 중요성을 간과한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 참패 이후 단 한 번도 미군에 대한 항공전력에서의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됩니다.  

 

제1기동함대의 패인과 태평양함대 승전요인

 

1. 항공모함 설계사상의 차이 

일본항모의 경우 항공모함의 경량화 및 유지보수의 용이성을 위해 갑판을 목재로 제작했으며, 이는 기동성과 항공기 이 착함 시

부하를 줄일 수 있는 장점 및 항공기 탑재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한번에 최대한 많은 항공기를 출격 

시켜 적을 선제타격하여 무력화시킨다는 교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반면 목재 갑판의 특성탓에, 방탄 성능이 전무하여 포탄 한두 발 로도  무력화되는 특성을 지녔습니다. 실제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급강하 폭격으로 인한 명중탄 단 1~3발에 모든 항공모함이 전투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반면 미국의 경우 마감은 목재로 하되 중간에 강철판을 넣어 생존성과 효율성을 모두 챙길 수 있게 했습니다. 

 

 2. 유연한 지휘체계와 전술 

일본은 제파공격 대신에 총공격 방식을 선호했던 관계로 최대한 많은 항공기를 동시에 띄워 피해를 최대한 끼치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공격대가 공격을 마치고 귀환을 하게 되면 전 함대의 전투력이 일순간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미드웨이 해전 당시에도 모든 공격대가 육상공격용 무장을 했다가 이를 대함무장으로 교체하는 사이 미국 항공모함은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격대를 발진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급강하폭격당시에도 명령의 혼선으로 아카기에 공격대가  과도한 표적 배당을 받자 급강하폭격기 2대가 임의로 표적을 변경하여 소류를 공격해 소류를 전투불능 상태에 빠지게 할 수 있었습니다.

 

3. 정보획득 노력

제1기동함대는 미군 함대의 대략적인 위치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고작 7대의 항공기로 1단색적을 시도했으며, 마침 기체결함으

30분 정도 늦게 발진한 4번 색적기의 담당방향에서 미 함대를 포착함 이로 인해 미국함대의 발견이 늦어졌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전투의 주도권을 놓치게 됩니다. 반면 미국은 암호해독을 통해 사전에 제1기동함대의 접근을 알고 있었으며 레이더를 적극 활용했을뿐 아니라 무려 50여대의 항공기로 2단색적을 감행, 최대한 빠른 시간에 제1기동함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데 성공합니다.

 

결론적으로 미드웨이 해전 당시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일본이 오히려 미국을 압도했으나, 지휘관의 전술역량 차이, 항공모함 설계

상차이, 함대결전 능력확보에는 큰 비중을 두었으나, 정보력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일본의 자만등이 겹쳐진 결과 발생한 연합함

 사상 최대의 패배였습니다.  

 

만일 맥클러스키의 급강하폭격편대가 공격을 포기하고 귀환했거나 제1기동함대의 항공대가 애초부터 절반은 육상공격임무 

그리고 절반은 함대공격임무로 나눠 대기하고 있었다거나 혹은 4번 색적기가 예정대로 발진해 조기에 태평양 함대 본진을 

측하는 데 성공했다면 아마도 전투의 향배는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이유들과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며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제국 패망을 앞당기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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