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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

2차대전판 AREA88? 실존한 용병 항공대 플라잉 타이거즈의 모든 것

by 미사리 건더기 202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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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A88의 실제 모델, 미국의 용병 비행대 플라잉 타이거즈! 잔혹했던 전장 속에 웃음과 전설을 남긴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별로 인기 없는 제 블로그 글 중에서도 제일 썰렁한 게 제2차 대전 관련썰이지만, 애초에 이 블로그 자체가 2차 대전 덕질하려고 만든 블로그다 보니 그냥 목적에 충실하게 풀어보는 썰입니다.

오늘 주제는 학창 시절에 만화책 좀 봤다 하면 한 번씩 이름 들어보셨을 불후의 명작 AREA88의 배경이 되었던 미국 비행 용병단 플라잉 타이거즈입니다. 엄청난 전과에도 불구하고 손발 오그라드는 부대이름과 그보다 더 답 없는 기행으로 더 유명했던 플라잉 타이거즈의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플라잉 타이거즈의 탄생과 셰놀트

 

때는 1941년, 아직 진주만 기습 이전이라 공식적으로 참전하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이미 그전부터 막 나가던 일본이 눈에 거슬렸던 루스벨트 황상대통령은 은밀하게 중화민국의 총통이었던 장개석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뭐 이거 저거 물심양면으로 열심히 중국을 도와주는 건 좋았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장개석의 국민당군은 일본군에게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었고 특히 항공전력의 열세는 그중에서도 뼈아픈 것이었습니다.

전투기는 돈 주고 살 수 있었지만 숙련된 조종사와 정비병은 돈 주고 살 수 없ㅇ….. 을리가요. (역시 돈이 채고시다) 장개석은 중국이 돈을 대고 미국은 조종사와 전투기를 지원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근데 문제는 아직 태평양 전쟁이 개시되기 이전이었고, 미국이 대놓고 정규 전투기편대를 파견한다면 당연히 이는 일본과 전쟁을 하겠다는 얘기였죠. 아직까지 미국은 전면적으로 일본과 전쟁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 을까요? 암튼, 대놓고 선전포고 하기에는 아직 미국이 준비가 덜 된 게 사실이었습니다.
 
각설하고, 잔머리를 굴리던 루스벨트와 장개석은 묘안을 하나 짜게 됩니다. '아니 정규군이 아니라 민간인이 의용대를 조직해서 싸우면 괜찮은 거 아님? 의용대가 외국에서 싸우겠다는데 그게 내 알바??'라는 눈 가리고 아웅을 시전 한 후 기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정장 말끔히 짜려 입은 미국인들 수백 명이 갑자기 중국 땅에 발을 내디뎠으니 이거시 바로 일본제국의 침략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조직된 정의감 넘치던 캡틴 아메..ㄹ.... 일리는 없었죠.(.....) 공식적인 이름은 AVG였으나 우리에겐 플라잉 타이거즈로 더 잘 알려진 이 집단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플라잉타이거즈의 창설자이자 단장은 바로 셰놀트(Claire Lee Chennault) 중령이었습니다. 원래 미 육군 항공대 장교였는데, 당시 미국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공군이 없었고 항공부대는 육군 항공대와 해군(해병) 항공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플라잉타이거즈
1942년 셰놀트와 플라잉 타이거즈 대원들


태생이 이랬던 만큼 육군 항공대는 어디까지나 육군의 작전을 지원하는 역할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이로 인해 전투기의 개별 편대전술보다는 폭격기 호위 및 지상공격등 임무를 중시했습니다. 셰놀트는 이러한 항공대의 기조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건 아닙니다! 를 주야장천 시전했고 결과는 대령 진급 탈락과 함께 대차게 잘리게 됩니다 ㅠㅠ ( 물론 건강상의 이유로 전역에 대한 본인의 의사가 더 크긴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 실의에 빠진 셰놀트에게 그러지 말고 중국 가서 너 하고 싶은 거 해보라는 오퍼가 들어옵니다. 오퍼 넣은 사장님은 바로 장개석의 와이프이자 미국 유학도 다녀와 미국물 많이 먹은 송미령(쑹메이링)이었습니다.

어차피 당시 중화민국 입장에서 대규모 전략폭격을 할 여유도 대규모 항공군을 편성할 수도 없었기에 요격편대를 잘 구성해서 일케일케 하면 가성비 쩔어줄 거라는 셰놀트의 주장은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죠.

결국 송미령의 주도하에 셰놀트를 비롯해 폭행, 음주 등 갖가지 사고 등을 이유로 항공대에서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파일럿들을 수거해 대상으로 전역 신청을 받아 민간인 신분으로 중국땅에 발을 딛게 되니 이것이 바로 플라잉 타이거의 시작이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문제아들 한 번에 분리수거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좋았고 중국 입장에서는 한 명이 아쉬운 전투기 파일럿들을 수급받았으니 이거시 바로 윈윈이었습니다.

송미령
플라잉 타이거즈의 든든한 백이 되어준 송미령


상황이 이렇다 보니 AVG (American Volunteer Group)의 정체성은 말이 좋아 의용군이 이었고 실상은 고액 연봉을 받고 모집된 용병단이었습니다. 인적자원이 인적자원이었던 만큼 엘리트 파일럿들의 간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일본군 말마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도적떼'가 오히려 어울리는 별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전설의 시작 


뭐 일단 인적자원이 어떤지는 차후 문제고 일단 싸우려면 비행기가 있어야 했습니다. 루스벨트 각하께서 친히 보내주신 전투기는 당대 기준으로 초 고성능.... 은 훼이크고 이미 한물간 P-40 워호크였습니다. 장점은 튼튼한 장갑과 기체구조, 그리고 화력이었고 단점은 그 외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 하지만 환불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미국이 '단순 변심으로 인한 교환은 어렵습니다 호갱님'을 시전 하자 셰놀트는 울며 겨자먹기로 P-40을 운용하기로 합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요. 셰놀트는 P-40의 단점에 괴로워하는 대신 P-40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p-40
플라잉 타이거즈의 상징인 상어 노즈아트가 마킹된 P-40 warhawk


일단 당시 일본 육군항공대의 주력전투기였던 Ki-27 하야부사와 해군 항공대의 주력이었던 A6M 제로센은 1차 대전의 전훈을 반영해 날렵하고 기동성이 좋았고 특히 제로센의 경우 선회반경이 매우 작아서 근접전투(dog fighting)에 매우 유리했습니다. 
(적어도 타치 위브 전술이 보편화된 마리아나 해전 이전까지는)

따라서 당시 셰놀트가 고안한 전술은 고고도에서 대기하다가 목표물이 나타나면 급강하해서 최대한 순간화력을 쏟아붓고 이탈하는 붐-앤-줌 전술이었습니다.  잽싸게 쏘고 잽싸게 튀는 이러한 전술덕에 제로센이 자랑하는 저속 선회력 따위는 무용 지물이었죠. 그리고 종잇장처럼 가냘픈 일본군 전투기들로써는 이러한 에너지 파이팅에 맞대응이 불가능했습니다. 
 
P-40의 장점을 살린 이러한 전술은 훗날 미국 전투기들의 표준 전술교리가 될 만큼 효과가 좋았고 고작 1년남짓 활동한 플라잉 타이거즈가 기록한 격추 스코어는 300여 대(일본 측 주장은 120기가량)에 달했습니다.
이건 단순히 일본군 비행기를 많이 격추시켰다 수준이 아니라 태평양전쟁 초반 열세에 있던 연합군 특히 인도-미얀마 전선 연합군에게 단비와 같은 전과였습니다. 이들 덕분에 인도-미얀마 선을 잇는 연합군의 보급로가 끊기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플라잉 타이거즈의 손실은 불과 1~20기 수준이었죠. 물론 이러한 전과가 단순히 P-40의 우월함이나 셔놀트 개인의 우수함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국민당의 상징인 청천백일기로 도장한 P-40


아무리 술, 여자, 도박 (남자 인생 망치는 삼대장)에 환장하고 군기는 엿 바꿔 먹은 플라잉 타이거즈 대원들이었지만, 그래도 하늘에서만큼은 진지하게 전투에 임했습니다. 최소한 밥값 이상은 하던 사람들이었죠. 위에서 농담 삼아 분리수거 운운 했지만 사실 이들은 바로 실전에 투입될 예정이었던 만큼 육군/해군/해병 항공대 지원자들 중에서도 가려 뽑은 실력파 파일럿 들이었습니다. 

 

당시 지원자들은 의외로 많았는데, 실전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모험심에 들뜬 파일럿들도 있었고, 금전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당시 미군 전투기 조종사 월급은 평균 300불 수준이었던데 반해, 플라잉 타이거즈의 대원들은 평균 연봉의 거의 2배에 육박하는 600불가량의 월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일본 전투기 격추에 성공하면 추가로 수백 불에 달하는 보너스까지 지급됐지만 결국 이 돈은 고스란히 플라잉 타이거즈 기지 근처에 위치한 술집들로 흘러들어 갔다는 게 학계의 점심입니다. 
 

플라잉 타이거즈의 기행

 

뭐 그냥 술 좀 먹고 도박 좀 한 거 가지고 무슨 기행까지 가냐 하실 분들도 있지만 사실 그 정도였으면 기행 운운도 안 했을 겁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랑군 폭격이었습니다.  정식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일부 대원들의 회고록에 등장하는 변기 폭격 사건이 바로 그겁니다.
1942년 6월의 어느 밤(정확한 날짜와 지역은 회고록마다 차이가 있음) 그날도 어김없이 코가 비뚤어지게 마신 플라잉 타이거즈 대원들 중 누군가 일본군 기지에 폭격을 하러 가자고 주장했고, 모두가 좋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문제는 부대 특성상 전투기만 잔뜩 있었지 변변찮은 폭격기 따위는 1대도 없었다는 겁니다.
 
정신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라면 거기서 웃고 끝냈겠지만, 이 사람들은 그 유명한 플라잉 타이거즈였습니다. 마침내 누군가 기지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낡은 C-47 수송기를 발견했고 대원들은 쾌재를 불렀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각종 폭탄과 수류탄 등을 주섬주섬 모아 왔지만 그럼에도 성에 안 찬 대원들은 마침내 화장실에서 뜯어온 변기를 싣게 됩니다. 이에 질세라 쓰레기통을 뒤지는 대원도 있었고 찌그러진 드럼통, 낡은 전투화 등등 떨어트릴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죄다 때려 박아 넣은 C-47 폭격기(?)는 우렁찬 툴툴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c-47
미국의 대표적인 전략폭격기(.......) C-47 스카이 트레인


그리고 얼마뒤 비행장을 경비하고 있던 일본군들 머리 위로 뭔가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난데없는 폭격에 당황한 일본군들은 황급히 몸을 낮추고 귀를 막았지만 폭발음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일본군들 머리 위로 수세식 변기와, 구멍 난 전투화, 음식물 쓰레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황당해하는 일본군들을 뒤로하고 플라잉 타이거즈 대원들의 낄낄 대는 웃음소리와 함께 C-47 '폭격기'는 무사히 귀환길에 올랐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 외에도 정확한 부대의 규모를 알기 어렵게 하기 위해 수시로 기체번호를 바꾸고 기지에 목업(Mock up) 비행기를 주기해 놓고 낄낄댔다는 등. 정예 파일럿이라기보다는 천방지축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던 게 바로 플라잉 타이거즈 대원들이었습니다.
애초에 플라잉 타이거즈 탄생에 큰 기여를 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송미령도 플라잉 타이거즈의 이러한 기행들을 웃어넘겼고 든든한 뒷배를 가진 플라잉 타이거즈 대원들이 더욱 의기양양했음은 물론입니다. 

전설의 끝

 

이들이 활약한 기간은 1941년 6월 경부터 1942년 7월까지로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전격적으로 기습하면서 미국이 참전했기 때문이죠. 더 이상 AVG를 운용할 이유가 사라진 겁니다. 결국 셰놀트를 비롯한 플라잉 타이거즈 대원들 중 일부는 미국 육군항공대로 편입되었고 나머지는 은퇴를 선택하면서 그렇게 유명세를 탔던 플라잉 타이거즈의 전설이 막을 내립니다.

에이스컴뱃
SEGA의 장수 타이틀인 에이스컴뱃 시리즈


하지만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용병 항공대라는 컨셉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AREA88은 물론 세가의 장수 타이틀인 에이스컴뱃 시리즈의 배경 설정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들이 남긴 기록은 짧았지만, 전쟁사에 ‘하늘의 용병’이라는 전무후무한 존재감을 각인시켰습니다. 변기를 폭탄 삼아 투하하던 장난기와, 목숨을 걸고 하늘을 지배하던 진지함이 공존했던 집단. 그래서 플라잉 타이거즈는 지금도 단순한 항공부대가 아니라 ‘전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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