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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의 믿기 힘든 실화들 – 곰 병사 보이텍, 해적기 키드 구축함, 스탈린그라드의 화장실 정전

by 미사리 건더기 202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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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은 제2차 세계대전, 그러나 그 속에서도 피어난 유쾌한 인간미! 해적기를 단 미해군 구축함, 곰과 함께 싸운 폴란드군, 스탈린그라드 전투 속 기묘한 정전 이야기까지, 믿기 힘든 실화들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발생했던 유쾌하다면 유쾌한 일화 몇 개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천만 명이 서로 죽고 죽이던 살벌하기 그지없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지만 전쟁터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다 보니 여러 재밌는 일화들이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정식기록에 남은 정사라기보다는 상당 부분 부대원들 구전으로 전승된 이야기라 신빙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내용을 보면 이걸 정식 문서에 기록하는 것도 문제(.......)일 법한 에피소드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중 몇 가지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해군 소속 해적선(?) 구축함 키드(DD-661) 이야기


 1943년 취역한 플레처급 구축함 아이작 C. 키드는 진주만 당시 전사한 키드 제독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구축함 이었으나, 정작 함장부터 승조원들은 17세기 전설적인 영국의 해적 윌리엄 키드와 이름이 같다는 점에 착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졸리 로져(해골모양) 해적 깃발을 당당히 마스트에 꽂고 다녔습니다. 당연히 이를 본 높으신 양반들은 '미합중국 해군 함정에 해적 깃발이 웬 말이냐!'라고 일갈했지만 함장은 '이건 깃발이 아니라 그냥 마스트 장식입니다'를 시전 하며 끝까지 버텼고, 결국 제풀에 지친 높으신 양반들이 포기했다는 얘기. 그리고 이 구축함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당당하게 해적깃발을 달고 여러 작전을 수행하며 많은 전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전사에 길이남을 만한 사고를 치고 마는데, 이른바 아이스크림 인질교환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 함대의
만능일꾼 역할을 했던 구축함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격추된 아군 비행기 파일럿 구조 였습니다. 하루는 전투기가 격추되어 바다에 동동 떠있는 미 해군 항공대 파일럿을 구조하는 데 성공해서 무사히 항공모함까지 데려다 줬... 으면 좋았겠지만, 
해적왕 윌리엄 키드의 배를 표방하는 해적선(?)이라는 자부심에 똘똘 뭉친 함장 이하 승조원들은 항공모함과 무전으로 네고를 시도 합니다. 

해적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아이작 키드. 아직도 졸리 로져 해적기가 달려있음.


당시 미군은 승조원들의 사기 진작을 목적으로 항공모함이나 전함 등 큰 배에 당시엔 귀했던 아이스크림 제조기계를 싣고 다녔는데 
구축함 키드의 함장은 이에 착안 하여 "너희들의 파일럿은 우리가 확보하고 있다. 무사히 돌려받고 싶으면 아이스크림을 내놔라!"라는 무전을 보냈고, 항공모함에서는 이 협상에 굴욕적(?)으로 응해 키드 구축함은 아이스크림과 파일럿을 교환하는 데 성공했다는 전설이 전해 집니다. (.........)
 

스탈린그라드에 피어난 인류애 


 때는 1942년 겨울. 이미 몇개월째 지속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과 소련 양측은 막대한 사상자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쥐떼의 전쟁이라고 부를 만큼 골목골목, 건물사이사이마다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기록에 의하면 심지어 같은 건물 안에서 독일군과 소련군이 서로 다른 층을 점령하고 대치했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혼돈의 카오스 상황에서도 의외로 전투가 소강 상태인 날들이 드물게 있었고 그런 날들은 서로를 봐도 공격하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한 독일병사가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있는데 마침 어느 소련병사도 그화장실을 방문했다가 볼일을 보는 독일군을 마주쳤습니다. 그러나 소련군은 독일군을 보고도 쏘지 않았고 독일군도 여유 있게 큰일을 다본뒤 자리에서 일어나 소련군 병사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소련군이 욕을 하면서 ‘네놈들이 내일부터는 이 화장실을 못 쓰게 해 주겠다!’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폐허가된 스탈린그라드 시가지에서 교전중인 독일군


또 다른 일화로는 어느날 밤 무너진 돌담 아래서 독일군 분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동유럽계 출신 병사가 있었는데 피로에 지친 분대원들을 위해 하모니카를 꺼내 동유럽 전통음악을 불었습니다.
한곡이 끝나자 돌담 바로 뒤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소련말이 들려왔습니다. 오친 하라쇼! (아주 좋습니다!)

놀랍게도 돌담 바로 뒤에 소련군들이 있었던 겁니다.
수류탄 한발이면 분대원들이 몰살당했을 상황이지만
그 소련군들은 공격을 하지 않았고 독일군들도 잠자코 음악을 감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자 아무 일도 없이 양측 모두 조용히 물러났다는 얘깁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있었던 저 일화는 카더라가 아니라 실제 사료에 남아있는 기록이라는 점이 더 놀랍습니다.

 

포탄을 나른 곰, 보이텍의 참전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일 먼저 독일에 의해 함락된 폴란드였지만, 적지 않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폴란드를 탈출해 폴란드 망명정부 소속의 자유 폴란드군에 입대해 싸웠습니다. 

 

그렇게 조직된 폴란드 제2군 소속의 제22보급중대가 이란 지역에서 작전하고 있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갑자기 부대에 반려 곰이 생기게 됩니다. (..........?)

이 곰은 1941년 태생(추정)으로 사냥꾼에게 목숨을 잃은 어미곰 옆에 있던 한 새끼곰을 

어떤 소년이 발견하고 한 폴란드인에게 팔았고, 그 폴란드인이 곰을 폴란드군에게 기증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부대원들과 새끼곰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 됐습니다.

보이텍
폴란드 군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보이텍

 

 

병사들은 새끼곰에게 보이텍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 정말 아기 돌보듯 돌봤고 보드카 병에 우유를 넣어 보이텍에게 줬습니다.

그 영향인지 보이텍은 평생 병에 담긴 음료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보이텍이 날로 커가자 병사들은  이름까지 붙여주고 부대의 마스코트로 삼게 되는데 당시 보이텍은 병영생활에 무척 잘 적응(?)해서 부대원들과 잘 지냈다고 합니다.

 

병사들을 보고 두 발로 서서 경례를 할 줄도 알았고 병사들과 함께하는 레슬링과 목욕을 즐겼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물론 보이텍을 이긴 병사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샤워기 레버를 실제로 조작할 줄도 알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뿐 아니라 병사들과 함께 맥주 마시는 것, 그리고 담배 씹는 것도 즐겼다고 하며, 이쯤 되자 부대원들도 보이텍을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진짜 동료로 여겼고, 부대가 이동할 때는 당당히 트럭 의자에 앉아 이동했다고 하죠.

 

보이텍
술과 레슬링을 즐기던 보이텍

 

이후 부대는 1944년 이탈리아 전선으로 배치되었는데 이동을 위해 영국 해군 수송선을 타려 하자, 영국군들이 동물은 승선할 수 없다며 보이텍의 탑승을 제지했습니다. 그러자 폴란드군들은 하는 수 없이 보이텍을 포기하게 되는.......... 건 애초에 시나리오에

없었고,  '그래? 그럼 뭐 우리 부대에 입대시키자' (........)라며 보이텍을 정식으로 부대에 입대시키는 기행을 벌였고 보이텍은 그렇게 이등병 계급을 수여받고 나서야 배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부대는 이윽고 이탈리아에 도착해 독일 공수부대가 점령한 몬테 카시노 전투에 투입됩니다.

독일 공수부대가 푸른 악마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치열했던 이 전투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치러진 가장 유명한 전투였습니다.

이때 보이텍은 당당한 수송부대의 일원으로서 전투 중인 병사들에게 탄약과 포탄을 가져다 날랐고 전투가 끝난 후 그 전공을 인정받아 상병으로 진급을 하는 쾌거를 달성합니다. 그리고 폴란드 망명군 제22중대의 공식 엠블럼도 포탄을 들고 있는 보이텍으로 바뀌게 됩니다. 

 

마침내 1945년 전쟁이 끝나자 폴란드군과 보이텍은 영국으로 보내졌고, 1947년 제22보급중대는 해체 수순을 밟습니다.

이때 보이텍은 에든버러 동물원에서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보이텍을 그리워하던 폴란드군 병사들은 자주 동물원을 방문했고, 보이텍은 자신을 보러 온 폴란드군 병사들을 보면 무척이나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62년 23세의 나이로 자연사합니다.

보이텍
폴란드군 참전용사와 포탄을 들고있는 보이텍의 동상

 

전쟁은 인간성마저 앗아가는 잔혹한 시대였지만, 보이텍과 폴란드군의 이야기는 전쟁 속에서도 피어난 우정과 연대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보이텍은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니라, 실제로 부대와 함께 싸우고, 함께 웃고, 함께 고된 나날을 버텨낸 전우였습니다.
그래서 폴란드와 영국 곳곳에 보이텍의 동상이 세워졌고 종전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이텍은 많은 사람들이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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