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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

레이테만 해전: 일본 해군의 최후와 야마토의 몰락 – 제2차 세계대전 최대 해전의 전말

by 미사리 건더기 202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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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 이후 몰락하던 일본 해군의 마지막 발악, 레이테만 해전! 야마토, 즈이카쿠, 무사시 등 일본 해군의 주력함이 격침되며 연합함대는 괴멸. 도박 같은 작전의 결말."

 

오늘은 일본 최후의 발악이었던 레이테만 해전에 대해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발생한 수많은 해전들 중에 레이테만 해전은 미드웨이 해전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해전입니다.
레이테만 해전은 태평양 전쟁판 발지전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도박성이 강했고 또 추축국의 마지막 대규모 반격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발지전투
히틀러 최후의 도박인 발지전투 당시 공세중인 독일군


차이가 있다면, 발지전투의 경우 최소한 초반에는 독일군이 연합군을 거세게 밀어붙였고, 어느 정도는 전과도 올렸었다는 것에 비해 레이테만 해전은 전과가 거의 없다시피 한 콜드 게임이었다는 점입니다. 미드웨이해전이 일본항공모함 전력의 종말을 불러왔다면 레이테만 해전은 일본제국 해군전력이 사실상 괴멸된 전투였습니다. 그럼 일본제국이라는 말기암환자의 산소호흡기를 뗀 것으로 유명한 레이테만 전투에 대해 ARABO도록 하겠습니다.

본편에서는 왜 일본이 레이테만 해전이라는 무리수를 두어야 했는지 그리고 경과는 어떻게 됐는지 일본관점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전투 배경

 

1944년,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투에서 연이은 패배로 육군 해군 할 것 없이 모두 망연자실한 상태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마침내 미군이 필리핀 공략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듣자 일본 대본영은 패닉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은 천연자원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고 석유, 고무, 주석을 비롯한 대부분의 천연자원은 동남아시아에서 공급받고 있었죠. 이는 전쟁 지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남방자원지대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힌 일본은 미국의 대규모 함대가 필리핀 상륙을 위해 집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박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야마토
세계 최대의 전함 이었던 (만재배수량 72,000톤) 야마토의 건조 중인 사


승리의 대가는 고작 몇 개월의 시간을 버는 것이었고 패배의 대가는 연합함대의 종말이라는 누가 봐도 비대칭적 구조였지만 이미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비명횡사한 시점에서 일본해군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일본군의 작전개요는 이랬습니다.
 
1. 미드웨이 해전 패배 이후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항공모함을 미끼로 강력한 미 제3함대를 유인해 미군의 전력을 분산시킨다.
 
2. 레이테만 근처에 주둔 중인 미 제7함대의 주력은 니시무라가 지휘하는 제2유격부대가 유인해서 시간을 끈다.
 
3. 이렇게 남, 북 양쪽으로 미 함대의 주력이 분산되면 구리다가 지휘하는 강력한 중앙함대가 레이테만에 돌입해서 제7함대의 잔존 함선 및 상륙부대를 격멸한다. 
 
얼핏 보면 꽤 그럴듯해 보이지만 저 작전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 작전이 수행되는 동안 미국 항공대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럴리는 없었고 결국 연합함대는 너무나 뻔히 보이는 미래를 애써 외면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그것도 아주 가혹한 대가를 말이죠. 
 
여담입니다만, 일본문화의 전통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일본군은 해군과 육군을 막론하고 신묘한 책략, 계략, 작전 등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했습니다. 실제로 수립되는 작전계획은 거의 분단위로 정밀한 톱니바퀴처럼 굴러가야 가능할 정도로 세밀하게 세워졌고, 
기만, 기습, 양동작전 같은 개념으로 도박에 가까운 계획을 세우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하지만 훈련상황도 아니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장환경에서 그것도 상대가 바보가 아닌 바에야 일본군이 의도한 대로 움직여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설사 의도한 대로 움직여 준다 해도 압도적인 전력차이로 인해 계획대로 작전이 굴러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몇 년간의 전투를 통해 우직할 정도로 이런 개념에 집착했던 일본군의 뻔한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미군은 '밤이 되면 야습을 하겠지', '전력이 저리 허술하게 노출됐으면 저건 미끼고 주력은 따로 있겠지'라는 걸 지겨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배경에서 레이테만 해전의 막이 올랐고, 이쯤에서 양측의 전력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측 전력비교 

 

일본 연합함대 전투서열


  1) 제1유격부대 (중앙함대) 구리다 중장 
    - 연합함대 전력의 주력으로 레이테만

     에서 미함대 와의 결전 담당
    - 전함 야마토 및 무사시 등 가장 위협적

      인 전함 전력 보유 
    - 전력상세: 전함 5척, 중순 양 10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5척
  
  2) 제2유격부대(남방함대) 니시무라 중장,

     시마 중장
    - 중앙함대의 공격의도를 숨기기 위해

      수리가오 해협 남쪽으로 진입
    - 후소, 야마시로 등 한 시대 전의 전함

      전력 보유 
    - 니시무라 함대의 뒤를 이어 시마 중장

      의 순양함  전대가 뒤따름
    - 전력상세: 전함 2척, 중순양함 3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11척
 
  3) 기동함대(항공모함전대) 오자와 중장 
    - 연합함대의 실질적인 항모전력 전부인

      4척  (즈이가쿠, 즈이호, 치토세, 치요다)

      으로 구성 
    - 미드웨이 해전에서 상실한 항공전력이

      복구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 제 3함대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 참여
    - 전력상세: 항공모함 4척, 중순양함 1척,
       구축함 8척 
 
 
 
미국 태평양함대 전투서열

   1) 제3함대(Task Force 38) : 홀시 중장
     - 태평양 함대의 주력으로 강력한 항공

       모함 및 전함대 편제 
     - 일본연합함대 주력 격멸 목표 
     - 전력상세: 항공모함 9척, 경 항공

       모함 6척, 전함 6척, 중순양함 8척,

       경순양함 14척, 구축함 60척 
    
   2) 제7함대(Task Force 77): 킨케이드 중장
     - 레이테만 상륙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편제
     - 호위항공모함 및 구형 전함이 편제되어

        있어 제3함대보다는 약한 전력을 가졌으나

        니시무라 함대 보다는 월등한 전력보유 
     - 전력상세: 호위항공모함 18척, 전함 6척,

       중순양함 8척, 경순양함 8척, 구축함 28척,

      호위구축함 29척

 

 
그냥 눈대중으로 봐도 이미 전력의 격차가 어마어마한 데다가 항공전력까지 감안하면 일본은 더 가망이 없었습니다. 일본군은 연합함대의 함재기와 필리핀, 루손등에 위치한 육상항공기를 합쳐도 고작 300대가량이 전부였으나, 미 제3함대와 제7함대는 무려 1,500대에 달하는 함재기를 운용했습니다.
 
더욱이 일본 함재기의 기체 성능이나 파일럿의 기량이 당시 미군에게 비벼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미 이 전투의 승패는 결정 난 상황이었습니다. 정신 제대로 박힌 나라의 지휘부였다면 애초에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전투를 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이었을 테지만 이미 당시 일본 대본영은 정신줄을 반쯤 놔버린 상태였고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기어이 공격을 개시합니다. 
 

전투의 전개 

 
레이테만 해전은 크게 4가지 국면으로 분류하는데 시부얀 해전, 수리가오 해전, 엥가뇨곶 해전, 사마르 해전이 그것입니다.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1. 시부얀 해전 (일본 중앙함대 vs 미국 제3함대)
 앞서 언급했던 대로 항공지원이 거의 불가능했던 관계로 중앙함대는 함재기 없이 레이테만을 향해 전속 항진을 개시합니다. 하지만 제3함대 소속 정찰기는 이미 이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고, 제3함대 함재기들의 영향권에 진입하자 수십대의 함재기들이 일제히 공습을 개시합니다.
일본해군은 열심히 대공포를 쏴 재꼈지만, 요격기 없이 대공방어를 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있었고, 결국 그 유명한 전함 야마토의 자매 함인 무사시가 이 공습으로 격침되는 대 참사가 발생합니다. 그 외 중순양함이자 함대의 기함이었던 아타고와 마야 역시 격침되면서 연합함대는 그렇게 원하던 함포 사격 한번 못해보고 전력의 상당수를 손실하게 됩니다. 
 
2. 수리가오해전 (일본 남방함대 vs 미국 제7함대)
니시무라 쇼지 제독이 지휘하는 남방함대는 수리가오 해협을 지나 레이테만 남쪽에서 접근, 중앙함대와 협격을 통해 미국의 제7함대 및 상륙부대를 격멸한다는 꿈도 야무진 계획을 세웠습니다만(표면적으로 그랬다는 거고 구닥다리 전함인 후소와 야마시로 달랑 두대가 주력인 허접한 전력으로 강력한 제7함대의 방어를 뚫으라는 것 자체가 그냥 가서 죽으라는 거였습니다) , 중앙함대와 마찬가지로 수리가오 해협 진입 전부터 미군 정찰기에 그 움직임이 상세히 포착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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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유물이었던 후소급 전함 후소


남방함대는 레이더 대신 견시에 의지해 야간 돌파를 감행하였으나 이미 인근 섬 곳곳에 매복하고 있던 미군 어뢰정과 구축함의 순차적인 뇌격에 제대로 대응도 못해 피해가 누적됩니다. 전함 후소가 격침되고 중순양함 모가미도 대파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가까스로 미 제7함대의 전함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당시 제7함대의 전함들은 대부분 신형 레이더를 탑재한 상태였고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레이더를 이용해 정확히 유효타를 냈습니다. 반면 레이더가 탑재되지 않았던 야마시로를 비롯한 남방함대의 잔존 함선들은 미함대의 이러한 함포사격에 변변찮은 응사도 제대로 못해보고 사실상 전멸하게 됩니다.

taskforce
레이테만 에서 작전중인 미국 제7함대 (TF-77)


또 멀리서 니시무라 함대를 뒤쫓아 수리가오 해협으로 진입한 시마 중장의 함대도 니시무라 함대가 전멸하는 것을 보고 선수를 돌려 퇴각하면서 수리가오해협 해전은 일본해군의 완패로 막을 내립니다. 여담으로 이 전투는 역사상 마지막으로 전함 간의 함포전이 발생 했던 해전으로 기록됩니다. 
  
3. 엥가뇨곶 해전 (일본 항공모함전대 vs 미국 제3함대) 
한편 미 제3함대의 항공전력을 ‘흡수’하는 역할을 맡았던 오자와 함대는 그 목표를 달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자와 함대를 포착하자마자 제3함대 소속 TF38에서 이륙한 함재기 280대가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고 비숙련 파일럿이 탑승한 종이장갑의 제로센이 주력이었던
연합함대 함재기들은 이륙하는 족족 불덩이가 되어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상공이 무방비 상태가 되자 수십대의 뇌격기와 수십대의 급항하폭격기들이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고 그렇게 일본의 마지막 정규항모 즈이카쿠를 비롯한 나머지 항공모함 3척도 모두 격침당했습니다. 이로써 일본 연합함대의 항모전력은 문자 그대로 전멸하게 됩니다.

즈이가쿠
항모 즈이가쿠 침몰 직전 만세를 외치는 일본군 승조원들


4. 사마르 해전 (미국 중앙함대 vs 미국 제7함대)
한편 시부얀 해전에서 전함 무사시를 잃고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구리다는 180도 변침을 지시하고 퇴로에 오릅니다. 그러나 사실상 당시 일본 해군의 주력 전부를 지휘하고 있었고 시부얀 해전에서 미국 주력 항모 함재기들의 공습을 막아냈다고 오판한 구리다는 다시 선수를 돌려 레이테만으로 진격합니다.
 

전투의 결말 

 

그리고 난데없이 미 제7함대 소속 TF77.3의 호위항모 전대와 맞닥뜨리자 엉겁결에 주포 사격을 개시합니다.
누가 봐도 미국 호위항모 전대의 전멸이 불 보듯 뻔했으나 미국 구축함 2대가 연막을 뿌리고 과감히 뛰쳐나와 뇌격을 실시합니다.
그리고 호위항모에서 발진한 함재기들도 공격에 가담했고 폭탄을 모두 소모하자 전함을 상대로 기총소사(!)까지 하며 결사적인 저항을 시도했습니다. 

레이테만 해전
레이테만 해전에서 일본 항공대를 향해 미군의 대공포화가 작렬중인 모습


구리다는 이러한 미함대의 분전에 기가 질린 데다가  중순양함 치쿠마가 격침되었고, 스즈야, 쿠마노도 심각한 피해를 입자 미국의 주력 항공모함 함대가 근처에 있다고 판단. 함대 퇴각을 지시합니다. 그렇게 일명 '구리다 턴' 이라고 불리는 이 오판으로 인해 연합함대는 레이테만에 돌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구리다 함대의 레이테만 돌입을 지원하기 위해 전멸을 택했던 오자와의 항공모함 함대와 니시무라 제독의 남방함대는 말 그대로 아무 의미 없는 개죽음을 당하게 된 셈입니다.

kamikaze
카미카제 공격시도 중 격추되는 일본 항공기


그리고 미국 입장에서는 정규항모, 경항모 보다 작은 호위항공모함 6척과 구축함 3척, 호위구축함 3척이라는 단촐한 전력으로 세계최대의 전함 야마토를 앞세운 강력한 전함 함대에 큰 피해를 입히고 퇴각시키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물론 당시 구리다의 중앙함대가 TF77.3을 격멸하고 레이테만 돌입에 성공했다 한들 미제 3함대와 제7함대는 사실상 피해가 없다시피 한 수준이었던 관계로  중앙함대 전체가 그대로 레이테만에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맥아더장군
레이테만 해전 종료 후 필리핀에 상륙중인 맥아더 원수

 

 

 

결론

 

결론적으로 일본 연합함대가 시도한 이 최후의 발악은 아무런 성과 없이 일본 연합함대의 마지막 판돈을 날려먹은 뻘짓으로 기록됩니다. 일본 연합함대는 무사시를 포함한 전함 4척, 정규항모 즈이카쿠를 포함한 항모 3척, 순양함 10척, 구축함 14척 격침이라는 재기 불능의 타격을 입었으나, 미국은 고작 호위항모 3척, 구축함 몇 척을 손실했고, 공중전력은 일본 함재기 200여 대 전멸, 미군은 함재기 100대 격추라는 스코어를 달성합니다. 당시 전황을 감안했을 때 미국이 상실한 100대의 항공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지만 일본이 상실한 200대는 가뜩이나 전력부족에 시달리던 일본 입장에서 사망선고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레이테만 이후 정상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일본 해군은 항복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옵션을 선택하는 대신

레이테만 해전에서 새로 선보인(?) 가미카제 전술에 더욱 매달리게 되었고 신요, 사쿠라바나, 카이텐 같은 희대의 자폭병기를 만들어 스스로 문명국임을 포기하는 수준까지 전락하게 됩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미군은 계산했고, 일본은 도박했습니다. 계산은 이겼고, 도박은 졌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 싸움의 결말을 레이테만 해전이라 부릅니다.

사쿠라바나
자폭전용기 사쿠라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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