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군과 제국주의를 지탱한 것은 대포가 아닌 염장 소고기였습니다. 짠고기와 하드택, 럼주로 버틴 대항해 시대의 식량 이야기와 콘비프 통조림까지 이어지는 흥미로운 음식의 역사.”
오늘도 어제에 이어 고기 이야기입니다 (츄릅)
독일 사람들에게 소시지가 있었다면, 영국 사람들에게는 염장 소고기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영국 음식 하면 홍차, 피시 앤 칩스를 먼저 떠올리지만, 한때 영국인 그리고 영국군인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떠받친 건 바로 다름아닌 염장 소고기였습니다.
바다와 짠고기
1588년 영국의 드레이크 경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이후, 영국은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한 나라였습니다. 영국은 대항해 시대부터 수백 년 동안 대양을 건너 다니며 식민지와 교역로를 확보했는데, 이 긴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실 총알도 대포도 아닌 바로 음식이었습니다.

신선한 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장거리 원양 항해에서 부릴 수 없는 사치였고 (사실 염장이고 나발이고 대규모 공장식 사육이 보편화되기 이전까지 소고기를 먹는 것 자체가 사치였습니다. 실제로 영국군의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떠돌이, 부랑아 등 하류계층 사람들의 주된 입대 동기 중 하나가 소고기와 럼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초석과 소금에 절인 염장 소고기와 하드택(건빵) 선원들의 주된 식량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대항해 시대의 선원들과 군인들이 먹었던 염장 소고기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스테이크나 로스트비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소금에 절여 돌덩이처럼 굳은 고기를 그대로 씹을 수는 없었으니, 보통은 바닷물 대신 빗물이나 오래되어 녹조가 핀 민물에 여러 번 담가 소금을 빼고, 그다음 펄펄 끓여 국처럼 만들어 먹는 게 일반적인 취식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먹을 수는 있다 수준이지 맛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너무 오래 저장한 고기는 종종 곰팡이가 피거나 악취가 심했는데, 이마저도 감지덕지로 여겨야 할 판이었죠. 여기에 하드택(딱딱한 건빵)을 곁들였는데, 이 역시 각종 벌레와 바구미가 가득한 경우가 많아서 먹기 전 바닥에 톡톡 쳐서 벌레들을 뺀 뒤 물이나 수프에 불려 죽처럼 만들어 먹는 게 정석이었습니다.
염장쇠고기와 하드택, 그리고 사탕수수를 원료로 대량으로 생산된 독한 럼주는 당시 긴 항해에 지친 선원들의 고단함을 달래는 몇안되는 수단이었습니다.

결코 싸지 않았던 염장 소고기
염장 소고기는 바다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퍼졌습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군대에서 사용되는 물품들은 일반인들에게도 훌륭한 생존 수단인 경우가 많았고, 지금 기준으로야 사람 먹을 음식 아닌 것 같은 게 염장 소고기였으나, 상대적으로 장기간 보존이 가능했던 염장 소고기는 선원들 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도 그나마 접할 수 있었던 고급 식품이었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랬다는 거지 결코 가격이 싸다고 할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염장 소고기는 그 맛과는 별개로 일반 생고기보다 가격이 더 비쌌습니다.

육류 자체가 고급 식재료인 탓도 있지만 당시 염장 소고기를 만드는데 필수적이었던 소금이라는 식재료도 결코 싼 식료품은 아니었기 때문이죠. 결국 영국이 18세기에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 병력을 대상으로 실사격 훈련을 했었을 만큼 부자 나라였기에 섭취가 가능한 식품이기도 했습니다.
18세기 런던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은 대략 6펜스 수준으로, 지금 돈으로 치면 ‘겨우 빵과 맥주 사 먹고 나면 끝’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신선한 소고기 값이 1파운드(450g)에 2~3펜스 정도였고 염장 쇠고기는 이보다 2~30%가량 더 비쌌습니다. 하루 종일 일해도 고작 1kg 정도밖에 살 수 없었던 셈이죠.
하루 품삯으로 1kg 고기를 살 수 있었다니, 지금 기준으론 ‘꽤 넉넉하네?’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기는 혼자 먹는 게 아니라 가족과 나눠야 했고, 일당의 대부분은 빵과 맥주를 사는데 거의 다 쓰였습니다. 게다가 염장 소고기는 신선육보다 비싸서 실제론 700g 남짓밖에 살 수 없었죠. 거기에 소금의 무게를 빼면 고기 자체의 무게는 더 줄어듭니다.

그러니 평범한 서민이 매일 소고기를 먹는 건 그림의 떡이었고, 소고기는 여전히 특별한 사치품이었습니다 결국 서민들이 염장 소고기를 일상적으로 먹는 건 불가능했고, 대개 군대에 입대하거나 배에 오를 때 비로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염장 소고기는 단순한 ‘보존식품’이 아니라, 제국주의 영국만이 누릴 수 있었던 사치품이었습니다.
당시 영국군과 영국사람들은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굉장히 큰 자부심을 느꼈고, 이러한 분위기는 20세기 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영국인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마하트마 간디도 젊은시절 소고기를 먹어야 힘이 세진다는 생각에
힌두교에서는 금기시 하는 소고기를 먹어봤던 일화도 전해지죠
19세기 들어 아일랜드와 아르헨티나에서 값싼 소고기를 수입하면서 ‘콘비프(corned beef)’라는 이름으로 대량 가공되기 시작하고 나서야, 일반 도시 노동자들도 어느 정도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corn은 옥수수가 아닌 알갱이를 뜻하는 영어 단어로 corned 즉, 소금 알갱이로 절여진 소고기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통조림등 보존수단이 발달하고, 사실상 예전 같은 염장 쇠고기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명칭이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소시지와 염장 쇠고기 닮은 듯 다른 두 이야기

결국 독일의 소시지가 숲과 빈곤이라는 환경적 요인에서 탄생했다면, 영국의 염장 소고기는 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가 낳은 산물이었습니다. 둘 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태어난 음식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 음식이 되고 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유통되는 콘비프 통조림은 필리핀산 콘비프 통조림입니다. 마트에서 팔길래 사먹어보니 먹을만 하긴 한데 제 입맛에는 너무 싱거워서 그닥 땡기는 맛은 아니더군요. 예전엔 우리나라에서도 콘비프 통조림을 만들어서 팔았는데 글 쓰다가 갑자기 먹고 싶어져서 검색을 해보니 단종된 탓인지 현재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아숩 ㅠㅠ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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