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한치의 평범함 없이
드디어 홋카이도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살았다 뭔가 아숩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드는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스스로 의아하게 여기며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꾸립니다.
오늘은 마지막날인 만큼 간첩 아니면 꼭 가봐야 한다는 그 돈키호테에 방문해 보기로 합니다. 뭐 주차할 곳은 없고 사람은 바글
바글 하고 혼미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인근 건물에 주차를 한 뒤 돈키호테에 들어섰습니다.
1층에서부터 온갖 아이템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2층, 3층으로 갈수록 점점 신기하고 재밌는 물건들이 즐비합니다.
뭔 인형 목도리모자도 있고 막 장난감도 있고 홋카이도 뱁새 에코백도 있고 그냥 신세계입니다. 이런덴줄 알았으면
그냥 3박 4일 동안 돈키호테에만 출근도장 찍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이것도 담고 저것도 담고 한참을
킥킥대며 구경하다가 문득 시계를 봤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출국비행기는 13시 30분이고 지금 시각은 11시라는
것을.... 13시를 3시로 착각한 것이 오늘의 폐패인 이었습니다.
정말 그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바구니에 담아놨던 아이템들을 공중에 흩뿌리다시피 집어던지며 국제미아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습니다. 몸부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탈주극에 가까웠습니다.
홋카이도 숙소에 도착한 첫날 그랬듯이 마치 무슨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돈키호테의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그렇게 차에 올라탄 저는 오로지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대한민국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베스트 드라이버답게
칼치기, 끼어들기, 급가속을 무기로 공항을 향해 냅다 달렸습니다. 첫날은 로드트립 크루즈 드라이빙이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F1 포뮬러 모드입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공항에 도착한 저는 늘 그렇듯 치밀하고 계획적인 사람답게
수화물 무게를 체크해 봅니다. 역시..... 수화물 캐리어 무게가 22kg였습니다.

이 치밀한 준비스킬에 스스로 리스펙트를 갈겨주며 캐리어에 있는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내 기내 반입용 배낭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출국 심사대에 올랐습니다. 아듀 홋카이도 아듀 삿포로 즐거웠다 꼭 다시 보자....
건오일 다섯 개와 구치장 사이 그 어딘가
라는 감상에 빠져있는 것도 잠시 출국심사관이 심각한 얼굴로 저를 부릅니다. (이쯤 되면 이벤트 없음 제 여행이 아닙니다)
뭐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 당당한 대한민국 소시민인지라 떳떳하게 앞으로가 뭐 문제 있냐고 들이대봅니다.
그랬더니 그 심사관이 이거 뭐냐며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냅니다. 네 그 망할 건오일 다섯 개였습니다.
왜 이거 들고 비행기 탈라 그랬냐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냅니다. 하....... 아 그거 그냥 오일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거 그냥 장난감에 뿌리는 오일이다!라고 다급하게 어필을 시전 하니 난처한 얼굴로 본인 상급자를 호출합니다.
뭐라 뭐라 일본어로 물어보니 그 상급자가 이색희가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저를 보더니 양팔로 대따 크게 대문자 X 포즈를
취하면서 '다메'를 외칩니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겁나 쪼발렸습니다. 여기서 계속 개겼다가는 인천공항 대신에 삿포로 구치장
방문할 각임을 느끼며 그렇게 울면서 건오일 다섯 개를 반납했습니다. 그리고 뭔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비비탄은
그냥 가방에 쑤셔 넣어줍니다 ㅜㅜ
그리고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아마도 이제 두 번 다시 제 인생에 없을 나 홀로 해외여행, 짧으면서도 길었던 3박 4일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처음이라 그랬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인재에 가까운 참사를 다양하게 겪었던 시간들이지만 입국 첫날부터 출국 때까지
매 순간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 한걸 보면 나름 즐거웠던 시간들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초전박살 내러 홋카이도 왔다가 초전박살 나고 만신창이가 되어 귀국한 제 여행기였습니다.
관광보다 사건이 많았고, 힐링보다 생존이 가까웠지만 덕분에 어느 여행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이야기 하나를 건졌습니다.
(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 다음에 또 어딘가에서 사건사고와 함께 돌아올 그날까지, 이상, 계획은 없고 기억만 남는
여행자 슈퍼 P였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에필로그
본 여행은 계획에 없던 이직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간 여행이었고, 원래는 와이프와 5월 초에 후쿠오카를 여행할 계획으로
숙소와 비행기표를 예약했었습니다. 그때는 와이프가 예약을 했었는데 제 여행기를 듣고 그렇게 박장대소하며 비웃던 본인은
PM과 AM을 헷갈려서 비행 2시간 거리인 후쿠오카 여행에 오후 9시 출국, 오전 11시 귀국행 티켓을 예매하는 대 참사를 벌이게 됩니다. 니나 나나 (........) 나중에 기회가 되면 후쿠오카 여행기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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