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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GOP 군생활 시절 썰 10편–기대와 허탈, 그리고 말년의 피눈물

by 미사리 건더기 2025.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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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허탈, 그리고 말년의 피눈물

 

그렇게 추운 겨울이 지나고 GOP에도 어느덧 봄이 왔습니다. 따스한 햇살과 포근한 기온에 나른한 날들이 지속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다들 후반야 근무를 마치고 소초로 복귀해 허겁지겁 아침식사를 하는 와중에 상황병이 배시시 웃으면서 취사장으로 오더니
폭탄발언을 합니다. 
 
                                                             "다음주에 대학생들 DMZ 국토종주 온답니다!"
 
헐?! 그러면 여대생들도 오는거 아니냐며 다들 웅성웅성..갑자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게 느껴집니다. (단순한 군바리들) 그러면 소초에서 1박을 하는거냐, 학생들 얼굴은 예쁘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등등 답도 없고 개념도 없는 아무 말대잔치가 성대하게 펼쳐집니다. 

국토종주
뭐 대략 이런너낌


그러자 소초장님이 경계체험 오는 게 아니고 국토종주라고 그냥 섹터 걸어서 지나가는 거라며 핀잔을 줬지만 어쨌든 오래간만에 초근거리에서 여자사람을 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저희들은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1주일이 지나고 마침내 방문예정일 하루전 갑자기 소초에서는 전례없던 미담사례가 쏟아집니다.
 
"최일병아 너 요새 힘들지? 내가 주간근무 대신 설게" "아닙니다 김상병님 요새 몸도 안 좋으신데 오침 하시지 말입니다" 
"야 너네 다 시끄러워 대인배인 내가 주간근무 선다" "말년이면 좀 말년답게 어디 짱박혀 계십쇼!!"
"말년이라고 사람취급도 안하냐! 너 그거 하극상이야!!" 
 
등등 옥신각신하며 조용하던 소초가 갑자기 서로 근무를 서겠다며 혼돈의 카오스로 물들었습니다. 
아무튼 가위바위보와 제비뽑기라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결전의 날(?) 대인배(?) 김 모 병장과 박 모 병장이 사이좋게 주간근무를 서게 됐고.....
문제는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 모종의 사유로 그날 대학생들의 저희 섹터 방문이 취소되는 대참사가 벌어집니다. (..........)
그렇게 자원해서 주간 말뚝을 섰던 말년 대인배들의 피눈물을 뒤로하고 속절없는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봄이었습니다
 

전역 전날의 마지막 밤


그리고 두 달 여가 지난 5월의 어느 날 저도 마침내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GOP에서는 신병을 잘 받지 않기 때문에 투입 후 10개월 여가 지나자 비번은 고사하고 하루저녁을 꼬박 새우는 병력도 나오던 판이라, 후방에서처럼 말년대기(연대나 대대본부에 전역 예정자들끼리 모아 일주일정도 쉬게 해 주다가 전역시키던 임의의 제도) 따위는 꿈도 못 꿨고, 전역 전날 오후에 예초기 작업 후 바로 경계근무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저희 소대에는 동기가 네 명이 있었는데 전역전날 기념으로 네명 모두 전반야 근무투입 시간인 약 18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자원해서 말뚝근무 섰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오전에 복귀해서 아침을 먹고 분리수거장 청소를 한 뒤 분대원들이 잠들어 있던 내무실에 들어가 조용히 전역모와 개인물품만 빼들고 나왔습니다. 중대장님에게 전역신고를 마치고 트럭을 타고 전곡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소초 막사를 빠져나가는데  멀리 고가초소에서 경례구호가 들려옵니다. 고개를 돌려 봤더니 소대 후임 한 명이 목청껏 경례구호를 붙이며 ‘받들어 총’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후임은 차가 고개를 돌아 안 보일 때까지 한참 동안 받들어 총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저희도 크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꼬박 24개월간의 군생활이 막을 내렸습니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 4박 5일 동안 샤워는 고사하고 양치질도 못한 채 훈련을 받은 기억도 나고, 제가 인솔하던 분대원들과 함께 대항군 박격포 진지를 급습하는 데 성공해 큰 칭찬을 받은 기억도 나고, 눈보라가 몰아치던 한겨울 밤새 언발을 동동 구르며 민통선 종심매복을 나갔던 일도 기억이 나고, 폭우가 쏟아지던 날 종심수색을 나갔던 기억도 나고 소대원들과 아웅다웅하며 지냈던 2년의 순간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났습니다. 
 

 

시리즈를 마치며

 

제가 운이 좋았던 탓인지 중대 분위기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고 그 덕에 여러 가지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몸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여기서 고생하는 덕에 우리 가족, 친구들이 발 뻗고 자는 거라고 서로를 다독이며 그렇게 지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전역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가끔 군시절 꿈을 꾸지만 그래도 별 수 있나 라며 꿈속에서 체념하는 저를 보면 그래도 나쁜 경험만은 아니었던 것 같긴 합니다.(모르겠고 다시 가라면 죽어도 안감 ㅇㅇ)

민통선
살벌한 민통선의 푯말


어쨌든 24개월동안 나라를 치키는데 나름 힘을 보탰고 , GOP에서 얻은건 연골연화증이고 비록 국방부는 1도 안알아 주지만 그래도 뭐 살아있으니까 된거 아니겠습니까 (..........)
 
그럼 제 GOP썰은  여기서 이만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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