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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

일본 경항공모함 류조. 조약 꼼수로 태어난 문제아

by 미사리 건더기 2026.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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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의 경항공모함 류조의 개발 배경과 설계 문제를 정리했습니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항공모함이 어떤 구조적 문제를 가졌는지, 그리고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의 침몰까지 상세히 설명합니다."

 

밀덕질 하다 보면 가끔 이런 물건이 나옵니다. 설계도를 보면 먼저 드는 생각이 하나죠. 이걸 진짜로 만들었다고??

일본 경항공모함 류조가 딱 그런 배입니다. 겉으로 보면 그냥 작은 항공모함 같지만 실제로는 군축조약의 빈틈을

이용하다가 설계가 꼬여버린 사례로 유명합니다.

 

류조의 탄생 배경

1922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이후 각국 해군은 항공모함 총톤수 제한을 받게 됩니다.

일본도 당연히 이 제한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묘한 구멍이 하나 있었습니다.

배수량 1만 톤 이하 항공모함은 제한 대상에서 제외.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헐? 그럼 1만 톤 이하로 만들면 개이득 아님??”

 

어차피 항공모함 총톤수는 묶여 있는데, 1만 톤 이하 항모는 제한이 없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작게 만들어서 여러 척 굴리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등장한 배가 바로 경 항공모함 류조입니다.

초기 설계 기준 표준배수량은 약 8000톤 수준이었습니다.

워싱턴군축조약
워싱턴 군축조약에 참석한 각국 열강 대표들

 

문제는 항공모함이라는 물건이 애초에 이런 작은 배에 잘 어울리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항공기를 많이 탑재하려면 갑판도 넓어야 하고 격납고도 커야 합니다. 그런데 배수량은 1만 톤 아래로 묶여 있습니다.

결국 시작부터 모순이었습니다.

 

무리한 항공기 탑재 설계

당시 일본 해군은 이른바 개함 우월주의라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전체 함대 전력은 열세지만 개별 함정의 성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그 격차를 극복하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듣기에는 꽤 그럴듯합니다.

 

문제는 정말 그렇게 좋은 방법이었다면 미국이나 영국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일본 해군은 그 발상을 꽤 진지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결국 류조는 작은 선체에 항공기 운용 능력을 최대한 꾸넣는 방향으로 설계됩니다.

 

격납 구조를 늘리고 비행갑판을 키우고 상부 구조물을 계속 올리고 이러다 보니 결과가 꽤 독특해집니다.

선체는 좁고 비행갑판은 높고 상부 구조물은 무거웠습니다. 

류조
판옥선을 보는 듯한 비쥬얼의 류조

 

쉽게 말해 몸통은 얇은데 머리만 커진 가분수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재미있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게 항공기를 많이 싣겠다고 설계를 바꿨는데 정작 생각만큼 많이 싣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제로기는 날개를 접을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이 때문에 격납 공간을 꽤 많이 차지했습니다. 결국 류조가 실제로 운용할 수 있었던 함재기는 약 30기 정도였습니다.

애초에 항공기를 많이 싣겠다고 설계를 바꿨는데 결과는 생각보다 소박했습니다.

 

그리고 개장

하지만 류조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복원성이었습니다. 배는 무게 중심이 낮을수록 안정적인데 류조는 항공기 시설과 격납 구조가 위쪽에 몰리면서

무게 중심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배가 꽤 불안정했습니다.

실제로 취역 이후 일본 해군 내부에서도 류조의 안정성 문제는 계속 지적되었고 훈련 중 격납고가 일부 침수되는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1934년 일본 해군에서 꽤 유명한 사고가 하나 터집니다. 토모즈루 사건입니다.

역시 과무장을 탑재한 가분수였던 소형 어뢰정 토모즈루가 폭풍 속에서 전복된 사건이었는데,

이 사건 이후 일본 해군은 자국 함선 설계를 전면 재검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류조 역시 대대적인 개장을 받게 됩니다.

 

대표적인 개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체 측면 벌지 추가
밸러스트 증가
상부 중량 감소를 위한 일부 장비 제거

이 개수를 통해 류조는 어느 정도 안정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다만 공짜는 없었습니다. 개장 이후 최고 속도는 약 2노트 정도 감소했고 일부 대공 무장도 제거하면 방공 능력도  떨어지게 됩니다.

 

태평양전쟁에서의 역할

어쨌거나 저쨌거나 개장을 통해 그럭저럭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는 수습을 했기에 개수 이후 류조는 여러 작전에 적극적으로

투입됩니다.

대표적으로

중일전쟁 항공 지원

알류산 열도 공격지원 

필리핀 작전

말레이 작전
네덜란드령 동인도 작전

등에 참가했습니다.

 

류조는 약 30기의 항공기를 운용하며 경 항공모함으로서 일본 항모 전력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대형 항공모함에 비하면 전력은 제한적이었지만 태평양전쟁 초기 일본군이 방귀 좀 뀌던 시절에는 꽤 바쁘게 굴러다닌 배였습니다.

 

동부 솔로몬해전과 류조의 최후 

류조의 마지막은 1942년 동부 솔로몬 해전이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류조는 고작 30여대 남짓한 함재기를 탑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미군 항모를 유인하는 미끼 역할로 투입됩니다.

그리고 미군은 그 미끼를 꽤 성실하게 물었습니다. 당시 다른 열강군대와 일본군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보통 다른나라의 군대는 미끼의 역할을 맡기더라도, 상대가 미끼를 물면 그 미끼도 반격을 가할 수 있거나 최소한

어느 정도 방어는 할 수 있도록 편제를 하는 게 상식적이었지만, 일본군의 미끼는 상대방이 물면 그대로 죽는 문자 그대로의 미끼였습니다.  

동부솔로몬해전
동부 솔로몬해전에서 회피기동중인 류조

 

 

아니나 다를까 류조의 위치를 파악한 미 해군 항공모함 사라토가에서는 급히 급강하폭격기와 뇌격기를 발진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류조는 이들 함재기로부터 격렬한 집중 공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류조의 상공을 엄호해 줄 요격기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덕에 전투가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관실과 선체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고 화재와 침수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결국 류조는 항해 능력을 잃었고 승조원 철수 명령이 내려집니다.

 

엔터프라이즈
동부 솔로몬해전에서 교전중인 미 항모 엔터프라이즈호

 

동부 솔로몬해전은 사실 규모가 크지 않았고, 양쪽의 피해상황도 상대적으로 심하지는 않았기에 태평양 전역에서 벌어진

다른 해전에 비해 많이 알려진 전투는 아닙니다. 

다만, 동부 솔로몬 해전의 결과로 인해 사실상 과달카날 전역에서의 일본군의 주도권이 상실되었고, 일본 항공모함 전력의

소모가 가속화되었다는 점에서 전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전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류조는 이 상징적인 전투의 마지막을 장식한 (비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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