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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일본문화의 매혹과 철학의 빈자리

by 미사리 건더기 2026.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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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본문화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게임도 좋아하고, 일본 성곽이나 갑옷,

무기, 전국시대 전쟁사 같은 것도 상당히 흥미롭게 봅니다.

 

당세구족
일본 갑옷의 정점이었던 당세구족

 

쇼군 토탈워2는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다시 켜는 게임이고, 사무라이 갑옷을 보면 일단 멋있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그러니까 일본문화에 별 관심도 없으면서 괜히 시비를 거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일본문화를 오래 보다 보면 묘한 공백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형식은 굉장히 정교합니다. 갑옷도 멋있고, 가문의 문장도 멋있고, 다도나 의례도 기가 막히게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그 형식을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인간과 사회, 권력과 책임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설명은 의외로 빈약합니다.

대신 충성, 명예, 희생, 절제 같은 단어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쉽게 말해 왜 그래야 하는지는 잘 설명하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멋있어 보이는지는 기가 막히게 설명합니다.

 

철학의 부재가 만들어낸 무사도의 환상

 

서구인이 일본의 무사도에 빠지는 건 이해가 갑니다.

사무라이라는 존재 자체가 서양의 기사와 굉장히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갑옷을 입은 전사, 주군에 대한 충성, 명예로운 죽음, 목숨보다 중요한 체면.

이쯤 되면 그냥 동양판 기사도입니다.

 

문제는 실제 전국시대의 무사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무사도 정신으로 살았느냐는 겁니다.

뭐 당연히 아니었습니다.무사들은 주군을 바꿨고, 배신했고, 협상했고, 혼인과 인질을 이용했고,

가문과 영지를 지키기 위해 굉장히 현실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충성심이 밥 먹여주는거 아니니깐요

사무라이
갑옷을 입은 사무라이들

 

결국 무사도라는 것은 복잡하고 지저분했던 실제 역사를 충성, 명예, 자기희생이라는 몇 가지 좋은 단어로 정리한

후대의 자기소개서에 가까웠습니다. 유럽의 기사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중세 기사라고 해서 맨날 약자를 지키고 숙녀를 보호하며 정정당당하게 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는 영지 다툼, 약탈, 전쟁, 돈 문제에 훨씬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대 문학에서는 갑자기 고결한 전사로 환골탈태합니다.

역사적 현실은 진흙탕인데, 이미지는 명예와 충성의 정수 입니다.

 

두 개념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왜 전사계급이 지배해야 하는가.

왜 백성은 그들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주군의 명령이 부당해도 충성해야 하는가.

통치자가 의무를 저버리면 그 권위는 어떻게 되는가.

기사도와 무사도는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을 슬쩍 바꿉니다.

기사도
저 장면 볼때마다 저러다 귀자를까봐 조마조마 함

 

왜 지배하는지는 묻지 않고 얼마나 용감한지를 말합니다.

전쟁이 정당한지는 묻지 않고 얼마나 멋있게 죽었는지를 강조합니다.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태도와 미학 문제로 바꿔버린 겁니다.

 

성리학적 세계관과 무사도의 차이

 

바로 이 지점에서 성리학적 세계관과 차이가 드러납니다.

성리학도 당연히 전근대적 신분질서를 전제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지금 기준으로 보고 “성리학도 결국 신분제를 정당화했잖아”라고만 하면

당시 세계관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겁니다.

 

그 시대에는 계급과 위계 자체가 거의 모든 사회에서 당연한 조건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누가 신분제를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사회구조를 어떤 논리로 설명했느냐입니다.

성리학에서는 우주의 질서, 인간의 본성, 가족윤리, 사회관계, 국가 운영이 따로 놀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수양이 가족의 질서로 이어지고, 가족의 질서가 국가의 통치로 이어졌습니다.

쉽게 말해 사람 사는 원리와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하나로 묶으려고 했습니다.

가훈
어느집 가훈이라는데 명필이신듯

 

그래서 충과 효도 단순한 수직적 복종이 아니었습니다.

자식에게 효를 요구하려면 부모는 부모다워야 했고, 신하에게 충을 요구하려면 군주는 군주다워야 했습니다.

왕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행동이 정당해지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군주가 잘못했을 때 간언하는 것도 불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잘못을 알고도 입을 닫고 있는 게 더 큰 불충이 될 수 있었습니다.

충성의 대상이 군주의 기분이나 사적인 욕망이 아니라, 군주가 마땅히 구현해야 할 도리였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왕권신수설과의 차이도 여기서 나옵니다.

왕권신수설은 왜 저 사람이 왕이냐는 질문에 신이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뭐 아주 간단합니다. 신이 골랐으니 왕이고, 왕이니 복종하라는 겁니다.

반면 성리학은 왕이 왕답기 위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를 계속 묻습니다.

백성을 안정시켜야 하고, 욕망을 절제해야 하고, 공적인 도를 구현해야 했습니다.

왕권신수설이 권력의 출처를 설명했다면, 성리학은 권력의 목적과 사용법, 평가기준까지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전자는 임명장에 가깝고, 후자는 운영규정과 감사기준까지 붙어 있는 셈입니다.

 

일본문화의 한계는 뭘까?

 

그렇다고 일본문화가 별 볼 일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형식과 연출에서는 정말 강합니다.

성곽, 갑옷, 문장, 다도, 의례, 계절감, 죽음의 이미지까지 하나같이 인상적입니다.

복잡한 현실을 몇 개의 강렬한 상징으로 압축하는 능력도 뛰어납니다.

설국
심미주의 일본문학의 대표작 설국

 

제가 일본 전국시대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 부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무사도 철학이 아닙니다. 병종과 지형, 전열과 성곽, 가문과 문장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자극입니다.

일본문화를 비판하면서도 일본의 역사와 게임, 무기와 갑옷을 좋아하는 건 전혀 모순이 아닙니다.

사무라이 갑옷은 멋있습니다. 다만 갑옷이 멋있다고 해서 무사도까지 실존했던 심오한 철학이 되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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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토탈워
야리 아시가루의 방진에는 죄가 없습니다.

 

일본문화의 특징은 어떻게 견딜 것인지, 어떻게 충성할 것인지, 어떻게 아름답게 무너질 것인지는 정말 잘 표현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 질서가 존재하는지, 그 질서가 정당한지, 잘못됐다면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습니다.

대신 철학적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 미학이 들어섭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점이 일본문화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매력이자, 동시에 가장 쉽게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미시마유키오
일본 문화의 명암에서 암을 대표하는 우익작가 미시마 유키오. 할복직전의 모습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디 문인의 자살을 찬양합디까? 걔들은 맨 자살을 찬양합니다. 아쿠타가와, 미시마, 가와바타 모두 자살해 죽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그들의 극한점인 로맨티시즘을 극복 못할 때는 죽는 겁니다.”   -박경리-

 

 

 

이상 일본문학에 대해 지인과 얘기하다 문득 든 생각 정리차 끄적여본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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