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혐오자가 집사가 되다
올림픽 대로에서 냥줍한썰 1편
2024.10.14 - [털뭉치들 이야기] - 올림픽대로에서 냥줍한 썰 1편
저는 사실 고양이를 안 좋아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혐오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 째진 눈동자 하며, 밤에 들으면 아기 목소리 같은 울음소리 하며, 도대체 고양이를 왜 키우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결혼 2년 차에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졸라대던 와이프한테 나는 고양이는 너무 싫으니 강아지를 키우게 해 주면 고양이도 키우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단, 강아지와 고양이 합사가 쉽지 않을 테니 상대적으로 경계심이 덜한 강아지부터 키우자며 꼬드겼고 순진한 와이프는 이에 넘어가버립니다.
일주일간을 고심하고 알아보고 한 결과 결국 세이블 포메라니안 한 마리를 입양하게 됩니다. 어찌나 똥꼬 발랄하고 까불어대는지 귀엽고 사랑스럽긴 한데 강아지를 처음 키워보는 와이프가 저에게 질려버린 얼굴로 묻습니다.
"오빠..... 근데 강아지는 자기 시간이라는 게 없어?"............
네 그렇습니다 24시간 치대는 새끼 강아지를 보며 난감해하는 와이프에게 말해줬습니다.
"고양이를 키우는건 같이 사는 거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건 육아야"
작전이 성공한듯 했습니다. 하루종일 산책 시키고 놀아주고 밥 챙겨주고 아주 진이 빠져하는 와이프를 보며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얘기는 안 하겠구나 내심 흐뭇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와이프는 만만히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정확히 2주 후 제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합니다.
"오빠 이제 고양이도 알아보자"
..................................
작전이 대차게 실패했음을 직감하며,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르웨이 숲 고양이 한마리를 추가로 입양합니다.............
집사생활의 시작
근데 이게 왠걸 키워보니 새침하고 도도하면서도 은근히 허당끼 있는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게 됐습니다.
하루종일 놀아주고 낮잠 자는데 끌어안고 뽀뽀하고 그래서 지금도 둘째는 제가 근처 가면 잽싸게 도망갑ㄴ...
암튼 그렇게 저희집에는 포메라니안 토리, 노르웨이숲 헤라 네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 났던 올림픽 대로
그래서 올림픽대로 길바닥에서 주워온 고양이를 어째야 할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무슨 병이나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고, 헤라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몰라서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일단 와이프한테 전화를 겁니다.
나: "여보세요? 나야 응 지금 퇴근해서 집에가고 있는 데 있잖아...."
와이프: "응 알았어 빨리와 저녁 차리고 있을게 근데 왜?"
나: "나 올림픽 대로에서 냥줍 한 것 같아".............
와이프: "............."
나: "............."
와이프: "예?? 냥줍을요? 올림픽 대로에서요? 왜요? 어떻게요?" (진짜 이렇게 말함)
나: "음 그러게요????????" (진짜 이렇게 말함 2)
와이프: "예??????" (진짜 이렇게 말함 3)
제가 들어도 황당했을 뜬금없는 이야기에 와이프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일단 동물병원 가서 진찰을 해보자고 합니다.
바로 집으로 가서 와이프를 픽업. 동물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토리와 헤라가 다니는 동물병원이었는데 의사 선생님 말로는 아직 생후 한 달도 될까 말까 한 상태고 영양상태도 안 좋아 보이고, 고양이 헤르페스에 감염되었는데 상태가 안좋아 보인다며, 아직 너무 어려서 혈액검사해도 의미도 없고 솔직히 한 달이나 버틸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십니다.
그럼 입원시킬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다른 동물 감염 우려도 있고 해서 입원은 어렵고 하니 일단 집에 데려가서 예후를 좀 보는 게 어떠냐고 하십니다. 하는 수 없이 예방접종 때까지 격리시키기로 하고 집에 데려와서 목욕을 시키고 처방받아온 항바이러스제와 항생제를 투여합니다.
뜬금없이 쓰게 된 육아일기
분유를 먹이려 했는데 익숙지 않아서 인지, 쮸르, 트릿, 분유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마련해 준 숨숨집에 숨어서 머리 박고 잠만 잡니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굶고 잠만 자는데 이러다 진짜 안 되겠다 싶어 주사기에 분유를 타서 강제급여를 시도했습니다.
네 그렇게 저의 육아가 시작됐습니다. 와이프는 거실에서 헤라 토리와 자고 저는 침실에서 고양이와 함께 지내게 됐는데 세 시간에 한 번씩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 강제급여를 하고 안약을 투여하고 간접 육아를 체험하게 됩니다.
뭐 먹지도 못해서 삐쩍 곯아 있는 애가 뭔 힘이 그렇게 나는지 주사기만 들고 급여시도하면 집이 떠나가게 빽빽거리며 울어재낍니다. 미치고 환장하고 팔딱 뛰겠습니다. 아니 당최 뭘 먹어야 하는데 그리고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분유 먹이는 게 거의 전쟁입니다. 급여 시도할 때마다 거의 절반은 뱉어버리고 식도까지 주사기를 욱여넣고 급여해야 억지로 몇 방울 먹는 게 답니다.
점점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몸은 몸대로 피곤하고 걱정되는데 맘처럼 밥을 안 먹으니 신경은 신경대로 쓰이고 이러다 진짜 갑자기 죽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괜히 데려왔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때 안 데려왔음 죽었겠지 하는 생각 하면 안도감도 들고 복잡 미묘한 생각이 일주일을 갔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새벽 무렵 또다시 전쟁을 각오하고 빽빽 울던 아깽이입에 주사기를 대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을 똘똘하게 뜨고 쪽쪽쪽 주사기를 빨아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안도감에 한숨이 납니다
마침내 아깽이가 강제급여에서 반강제급여 단계로(?) 진화한 겁니다. 너무 기특했습니다. 뭐 지가 딱히 한 거는 없.....
"그래 넌 살겠구나 다행이다."
그렇게 앞발로 주사기를 잡고 열심히 쭙쭙 하는 고양이를 보며 조용히 속삭여 줬습니다.
- 3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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