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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잡설

부러져버린 욱일승천의 날개 제로센

by 미사리 건더기 202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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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센 이란?

 
오늘은 제국주의 시대 일본의 영광과 종말을 함께한 일본제국의 상징 제로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제로센의 정싱명칭은 A6M 영식함상제공전투기로 자칭 만세일계를 주장하는 일본의 건국(황기) 2600주년에 실전 배치되어 이와 같은 명칭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를 줄여 흔히 '영전' 또는 영전의 영일 혼합단어인 '제로센'(제로센토키)이라고 불리게 되며 이 기종을 주로 상대했던 태평양 지역 미해군 항공대 조종사들이 제로센이라고 부르면서 제로센이라는 명칭으로 굳어지게 된다.
 
제로센은 고작 900마력 수준의 엔진출력으로 당시 미해군 항공대의 주력 전투기 기종이었던 와일드캣 F4F를 압도하는 
수준의 선회력과 급가속능력, 월등한 비행반경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태평양 전선 개전 초반 미군 파일럿들에게
이른바 '제로센 쇼크'를 불러일으키며 단숨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당시 제로기를 상대하던 미군 파일럿들은 '잽스(Japs)들이 기어이 2,000마력 엔진을 얹은 전투기를 만들었다!' 며 공황상태에 빠졌다. 1차 대전 당시의 공중전 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2차 대전 초기에는 선회 전 중심의 공중전이 주로 이뤄졌으며, 이로 인해 제로센은 특유의 저속 선회력을 적극 이용하여 수많은 미군 파일럿들을 불귀의 객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제로센
일본제국 해군 항공대의 0식 함상제공전투기 제로센

 
제로센은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촉발된 태평양 전쟁기간 내내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로 쓰이게 되는데, 당시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악한 기술력과 공업력을 보유한 일본이 어떻게 이런 괴물 전투기를 개발하게 되었을까? 
 
중일전쟁이 한창인 1930년대 후반, 당시 일본제국 해군은 96식 함상전투기의 부족한 항속거리 및 공중전 성능을 개량한
후계기종 도입을 위해 경쟁입찰 방식으로 나카지마사와 미쓰비시사에게 작전성능요구안을 제시했는데 주요 요구안은 다음과 같았다. 
 
 1. 적 전투기보다 우수한 공중전 능력을 가질 것 
 2. 최고속도는 시속 500km/h 이상일 것 
 3. 고도 10,000 피트까지 3분 30초 이내 도달할 것
 4. 순항속도에서 최대항속시간은 6시간 이상일 것 등
 
이는 당시 일본의 공업 수준을 생각했을 때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였고, 결국 입찰에 참여했던 나카지마 사는 중도포기 했으며 미쓰비시중공업은 작전요구성능을 좀 현실성 있게 제시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당시 일본제국 해군의 미군 다음가는 주적이었던 일본제국 육군(?)의 주력 Ki-27에 비해 월등한 성능의 전투기를 원했던 해군은 네고를 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참고로 일본제국 육군과 해군의 대립은 메이지유신 시절 사쓰마번과 조슈번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같은 국가의 군대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사이가 안 좋았기에  협력은커녕 일본 육군 소속 잠수함(.....), 일본 해군 소속 전차(.....)를 독자적으로 운용할 정도였다.)

일본제국 육군 항공대 소속 Ki-27

제로센의 비밀

 

아무튼 미쓰비시는 공돌이들을 갈아 넣어 해군이 요구했던 작전성능을 충족하는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성공했으니 이 전투기가 바로 제로센이었다. 제로센은 당시 해군이 요구했던 작전성능을 충족시켰던 전투기인 만큼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제로쇼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전초기 엄청난 활약상을 보이며 주목을 받았으나 그 실상은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이었던 당시 일본제국의 사상을 그대로 투영한 기체라는 것이 얼마 안 가 밝혀지게 된다. 
 
사실 '제로센의 신화'는 생각보다 일찍 깨지게 되는데 이는 제로기의 태생적 한계로 인한 결함 수준의 설계 때문이었다.
사실상 900마력에 불과한 엔진으로 압도적인 성능을 뽑아낼 수 있었던 비결은 간단했다. 기체의 무게를 극단적으로 줄여 추중비를 늘린 것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기체 골조에는 구멍을 뚫었으며, 조종석은 물론 연료탱크에도 방탄설비를 제거하였다. 이 같은 구조로 인해 제로센의 최대속도는 540km 수준이었으나, 이 '최대속도를 넘기면 기체에 무리가 가고 조종이 안됩니다.' 수준이 아니라 그대로 기체가 오체분시 된다는 의미였다.
 
이는 당시 일본군부에 만연해 있던 인명경시사상이 어느 정도로 심각했는지 그 단면을 볼 수 있는 사례로, 상대적으로 양성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파일럿들의 생존성까지 간과했을 정도면 일반 병사들의 생명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었다. 
 
제로센의 특기 중 하나였던 저속 선회능력 또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었는데, 1차 대전 때의 항공전술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였다. 1차 대전 항공기는 엔진성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항공기의 속도가 매우 느렸고 이 때문에 서로 빙글빙글 돌면서 상대편의 꼬리를 잡는 전투가 일반적이었고, 이로 인해 양력을 최대로 받기 위해 복엽기, 심지어는 삼엽기까지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2차 대전기에 접어들면서 항공기술의 발전으로 전투기의 최대 속도가 빨라지고 급기동이 가능해지면서 고고도에서 대기하다가 적기 포착 시 급강하하면서 공격을 쏟아붓고 이탈하는 이른바 '붐 앤 줌 전술'이 대세가 되었으며, 상대적으로 기체강도가 약하고 엔진출력이 약했던 제로센에게 이러한 '에너지 파이팅'은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또 극단적인 경량화로 인해 미국의 동급 전투기대비 화력도 부족한 수준이었다. 이로 인해 제로기를 상대하기 위해 고안된 '타치위브 전술'이 최초로 쓰이기 시작한 미드웨이 해전 당시부터 제로센의 신화는 깨지고 말았다. 태평양전쟁 중 후반기 등장한 미군의 헬켓과 콜셰어의 압도적인 성능 앞에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헬켓의 경우 제로센의 공격을 받아 피탄 되더라도 상식적인 수준의 방탄성능덕에 조종사가 즉사하거나 기체가 바로 조종불능에 빠지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방탄설비가 전무했던 제로센은 적기가 쏜기관포의 포탄에 한두 발만 맞아도 바로 불덩어리로 변해 추락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제로센 킬러 미해군 항공대 헬켓

 
물론 일본 해군에서도 제로센의 한계를 인식하고 후속기종 개발에 착수했으나, 갈수록 더해지는 미군의 압박에 후속기종의 개발 및 양산은 물 건너가게 되고 결국 종전 시까지 일본제국 해군의 주력 전투기로 남게 된다. 
 

제로센의 몰락

 

특히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라고 일컬어지던 필리핀해 해전에서 제로센이 맞닥뜨린 헬켓은 가히 악몽 그 자체였고
전투교환비는 20:1에 육박할 정도로 제로센이 일방적인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면서 일본 해군항공대는 괴멸하게 된다. 
 
특히 일본 해군의 입장에서, 미드웨이 해전에서 잃은 정예파일럿들의 손실을 채 보충하기도 전에 당한 괴멸적 패배로 일본해군은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되며 그나마 살아남은 소수의 파일럿들 마저 카미카제라는 희대의 삽질로 소모해 버린 탓에 패전이 임박했던 오키나와 전투 때부터 제로센은 제공전투기보다는 자폭공격기로 동원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갈데까지 간 일본 군부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카이텐, 사쿠라바나 같은 자폭전용 병기를 개발하여 실전에 투입했으나 이미 베테랑 파일럿들은 모두 전사하거나 무의미한 자폭공격에 소모되어 이마저도 별 볼 일 없는 성과를 거둔다.
그것도 모자라 '1억 총옥쇄'를  부르짖으며 미쳐 날뛰던 일본제국은 결국 유일무이한 원폭 피격국의 영예로운 타이틀을 거머쥔 채 침몰하고 만다. 
 
그리고 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울좋은 꿈과 함께 날아올랐다가 칠면조처럼 추락한 제로센도 일본제국과 그 운명을 같이 하게 되었다. 
 
 

자폭공격기 일명 사쿠라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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