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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잡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몇가지 오해와 진실 3편

by 미사리 건더기 202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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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진실 2편 보러 가기
2024.11.20 - [밀리터리 잡설] -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진실 2편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몇가지 오해와 진실 2편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진실 1편 보러 가기2024.11.11 - [밀리터리 잡설] -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진실 1편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몇가지 오해와 진실 1편역사는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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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일군의 기갑부대는 정말 막강 했는가?

 

관련 글에서 벌써 수차례 언급한 대로 제2차 세계대전 개전일 까지도 독일 기갑부대의 질은 형편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프랑스를 위시한 연합국의 온갖 삽질과 무능과 운에 의존한 히틀러의 도박이 성공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개전 2년이 지난 후인 1941년 6월 22일 시작된 소련침공, 이른바 바바로사 작전에서의 독일 기갑부대는 어땠을까요? 네 바바로사 작전에서도 독일 기갑부대의 질은 형편없었습니다. 소련의 기갑전력과 비교하면 독일군은 한세대 이전의 기갑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죠. 오죽하면 체코합병 이후 노획한 38(t) 전차를 주력으로 굴렸을 정도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개전 첫날 독일군이 마주한 소련군의 KV-1 전차와 T-34 전차는 독일군에게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독일 제6기갑사단은 개전 첫날 국경인근의 작은 마을 교차로에서 기동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홀로 고립되어 있던 소련군 KV-1 전차를 마주치게 됩니다. 독일군은 가진 전차 및 대전차포로 KV-1에 일제사격을 가하지만 격파는커녕 장갑에 흠집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수준이었고 급기야 사단이 보유한 모든 야포를 동원해 사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KV-1은 멀쩡 했습니다. 

 

KV 쇼크

 

명색이 기갑사단이 전차는 물론 사단이 가진 모든 중화기를 끌고 와서 하루종일 포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KV-1은 멀쩡했고 이 사태를 본 독일군들은 공황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결국 야음을 틈타 공병대가 접근해서 차체 하부에 폭약을 설치 후 폭파 시킨 다음에야 간신히 KV-1을 격파할 수 있었고 독일군은 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훗날 이른바 KV쇼크라고 불리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소련군의 중전차 KV-1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슬라브인들이 독일군도 못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전차를 만들어냈다는 것에서 비롯된 자괴감과 무력감은 이후 새로 제5호 전차 판터, 제6호 전차 티거를 개발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 이전 독일군의 계획은 제3호 전차를 이용해 대전차전을 수행하고 상대적으로 장갑이 두꺼운(?) 제4호 전차를 이용해 보병을 지원하는 것이었으나 그나마 확장성이 있었던 제4호 전차에 비해 더욱 빈약한 장갑과 확장성을 가진 제3호 전차가 소련 기갑부대를 상대로 대전차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차라리 망상에 가까웠습니다.

3호전차
바바로사 작전에 투입된 제3호 전차


이외에도 단 십 수대의 KV-1 전차로 독일 전차 수십대를 격파하며 독일 기갑사단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이때 독일이 실전배치한 지 얼마 안 된 제4호 전차 역시 전면 장갑이 50밀리미터에 불과했던지라 76mm포를 탑재한 KV-1는 원거리에서부터 독일 전차를 일점사로 격파하기 시작했고 57미리 단장포로 무장한 4호 전차는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됩니다. 

작전중인 독일군 제4호 전차 초기형



바바로사 작전 초기인 1941년 여름, 소련이 실전배치한 이런 KV-1 전차는 무려 650대에 달했고 독일군은 개전첫날부터 전 전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시무시한 전차도 소련의 낙후된 교리체계 및 미숙한 지휘로 말미암아 88mm 대전차포를 동원한 독일군 앞에 하나씩 격파되기 시작했고 곧 전선이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독일 기갑부대의 수준

 

질적으로 독일전차가 소련전차와 비등한 수준까지 올라선 것은 제5호 전차 판터와 제6호 전차 티거를 실전배치 했을 때부터였으며, 심지어 그때에도 소련의 전차 스펙은 독일 전차 스펙에 비해 전혀 꿀리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단지 광학장비의 정밀성 부족 및 승무원들의 노하우 부족으로 인해 개전 초 중반까지는 독일군 기갑부대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나 이러한 이점도 대전 후반기에 들어서 독일군 숙련병 대다수가 전사하고 소련군의 노하우 축적으로 말미암아 곧 독일군을 압도하게 되었습니다. 

판터
제6호 전차 판터


대전 후반기 당시 독일군이 결전병기급  전차로 애지중지하던 티거 역시 최신예 소련 중전차인 IS 요시프 스탈린, SU-100등의 기갑장비 보다 하등 낫을 게 없는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갑전력의 숫자는 소련군이 늘 독일군을 압도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군의 놀라운 감투정신과 근성으로 근근이 전선을 지탱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정신이 아니었던 히틀러는 고집을 부리며 늘 공격 아니면 최후까지 사수 명령만을 앵무새처럼 부르짖었고 이 때문에 무수히 많은 독일군 정예병력들과 한 줌도 안 되는 기갑전력은 허무하게 갈려나가기 일쑤였습니다. 

현실이 이랬음에도 불구하고 당대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적 독일 전차군단의 신화가 남아있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선진적이고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가 큰 역할을 했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초반에 지리멸렬했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군이 이렇게나 막강해서 우리가 밀렸다는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독일군
스탈린그라드 인근에서 전투중인 독일군

 

거기에 더해 항상 호들갑 떨기를 좋아하는 미국의 경우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서부전선에 배치된 독일군 2 선급 부대를 상대하면서도, 미군의 표준 기갑장비였던 셔먼에 비해서는 앞서는 전력이었던 판터와 티거의 성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이에 독일군은 원체 세다며 치켜세워주기 바빴습니다. 

 

헐리웃 영화의 프로파간다로 인해 미국이 2차 대전 다 끝낸 줄 아는 분들이 꽤 있지만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전사상자의 80%는 동부전선에서 발생했으며, 미국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1944년 6월은 이미 소련에 의해 독일의 패전이 확실시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나마 편제가 어느정도 되어있던 부대는 모조리 동부전선에 차출된 상태였고 당연히 전쟁이 시작되지 않은 서부전선에 남아있던 부대들은 동부전선에서 큰 피해를 입고 재편성 중이거나 휴식을 위해 주둔하던 부대들과 점령지 각국에서 차출한 사기도, 훈련도도 낮은 2 선급 부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 마지막 한줌까지 쥐어짜내며 분전을 펼치고 있던 동부 전선에서 조차 기갑'사단' 또는 기갑'연대' 내에 운용가능한 전차가 십 수대 뿐인 경우가 태반이었으니, 서부전선에 배치된 독일군의 수준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결론

 

히틀러
제2차세계대전의 원흉 아돌프 히틀러

 

 

결론적으로 말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기갑전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단 한 번도 연합국들보다 우위에 있던 적이 없었으며, 당시 독일이 이룩한 대다수의 업적은 독일군 개개인의 근성과 감투정신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근성과 감투정신의 이유가 4년여간 러시아 점령지에서 독일군이 자행한 엄청난 만행때문에 '이 전쟁에서 지면 몰살이다.' 라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는 점에서 별로 감동의 여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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