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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 [밀리터리 잡설] - 수박 겉핥기로 보는 기병의 변천사 1편
전열 보병(Line Infantry)의 등장
머스킷 소총과 총검이 보병들의 표준 무장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이른바 전열 보병(Line Infantry)이 전장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열보병들은 중세시대의 보병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혹하고 엄격한 훈련을 받았는데 이러한 가혹한 훈련의 목적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꼿꼿이 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재수 없게 적의 총탄을 맞으면 죽겠지만, 자리에서 이탈하면 확실히 죽을 때까지 채찍질을 당한다."는 것을 병사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가혹한 규율과 훈련을 통해 보병은 적의 기병이 나타나면 정사각형의 밀집대형을 이루고 기병의 돌격을 막았는데 한번 대형이 갖춰진 보병의 방진 대형을 기병대가 단독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습니다. 단적인 예로 나폴레옹 최후의 전투였던 워털루 전투 당시, 프랑스군의 기병대 총사령관이었던 네이(Ney) 장군이 지휘하던 프랑스 기병대 5천명이 밀집방진대형을 구축하고 기다리던 영국군 보병에게 정면돌격을 감행했다가 문자 그대로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되면서 이러한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기병의 분류
물론 그렇다고 이 시기에 기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기병대는 그 목적에 맞게 세분화되었는데 크게 경기병, 중기병, 창기병, 드라군(Dragoon) 등으로 구분되었습니다.
먼저 경기병의 경우 이제는 크게 의미가 없어진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완전히 벗고 완만하게 구부러진 곡도로 무장한 채 특유의 기동성을 발휘하여 미처 대열을 갖추지 못한 적의 보병대를 기습하거나 보병대의 엄호를 받지 못하는 포병대를 기습해 전과를 올렸습니다. 또한 패주 하는 적의 보병들을 추격하여 전과를 확대하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었죠.
다음으로 창기병의 경우 2미터 남짓한 가벼운 기병창으로 무장하고 특유의 충격력을 활용해 기동 중인 적의 경기병대를 요격하거나 사격대형을 이룬 보병들의 후방을 급습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주무장인 기병창의 특성에 따라 이들의 일제 돌격 시 순간적인 충격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었으나 일단 근접 전에 돌입하게 되면 오히려 곡도로 경기병들에게 밀리기 마련이었으므로 주로 순간적인 기습을 통해 적 대형을 와해시키는 것이 주 임무였습니다.
중기병은 특이하게 이미 전장에서 사라진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물론 중세시대처럼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것은 아니고, 가슴과 등만 가리는 조끼형태의 갑옷 즉. 흉갑을 입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기병들과 달리 어느 정도의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대기병전 또는 제한적인 규모의 보병대형에 돌격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적의 허를 찌르는 기습이나 전과확대를 위해 패주 하는 적을 주로 상대하던 경기병과는 달리 이들은 정면전투를 담당했던 만큼 매우 위험한 상황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 때문에 기병 중에서도 정예병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라군(Dragoon)은 한국어로 용기병으로 번역되는데, 특이한 것은 기병과 보병의 역할을 모두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경기병의 역할이 필요할 경우 경기병처럼 운용되었고, 기병총(Carbine)으로 무장한 덕에 특정 지점에 신속히 보병을 투입해야 하는 경우 기동성을 활용. 해당 지점으로 이동하여 말에서 내려 일반 전열보병처럼 대형을 이뤄 싸우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다목적 운용이 가능했던 덕에 용기병들은 전시뿐만이 아닌 평시에도 후방에서 치안유지 업무를 수행하는 병과였는데, 이 때문에 드라군은 현대 군사경찰의 효시라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서부개척 시대를 거쳐 남북전쟁기간 수많은 기병대를 운용했는데 이들의 주무장은 5 연발 리볼버 권총이었습니다. 보통 허리 양쪽에 두 자루의 리볼버를 장비한 채 마상에서 10발을 사격하고 기병도를 뽑아 난전을 벌이곤 했는데 대개의 경우 총격전으로 승패가 결정되어 진쪽이 기수를 돌려 후퇴하곤 했습니다.
당시 남북전쟁을 참관하던 유럽의 장교는 이러한 전투 방식을 보고 ‘그럴 거면 애초에 왜 말을 타고 죽어라 달려와서 싸우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총기의 성능이 지속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기병대가 금세 사라졌을 것 같지만 의외로 꽤 오랫동안 그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제1차 대전 초반에도 대규모의 기병대가 운용되었지만 상대적으로 피탄면적이 작은 보병들도 기관총 사격에 쓸려나가는 판에 2미터가 훌쩍 넘는 피탄면적을 가진 기병대는 어디 숨을 곳도 없었던 지라말 그대로 학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며 신속하게 잔장에서 퇴출되고 맙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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