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함 거포의 최후 전함 야마토 1편 보러 가기
2024.10.25 - [밀리터리 잡설] - 거함 거포의 최후 전함 야마토 1편
제2차세계대전 당시 군함의 분류
야마토가 어떤 군함인지 알기 위해 먼저 당시 사용됐던 군함의 분류에 대해 잠시 알아보도록 한다.
어뢰정: 어뢰를 사용한 뇌격을 목적으로 건조된 배로 만재배수량은 100톤 이하로 보통 열명 내외의 승조원이 탑승하였다.
작은 크기로 인해 원양항해는 불가능했으므로 본격적인 함대결전에는 참가할 수 없었고 주로 연안해역을 순찰하거나 매복해 있다가 어뢰를 발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비록 뇌격 성공률이 낮기는 했으나, 뇌격을 통해 적 주력함의 진로를 방해
하거나 전열을 흐뜨러트리는 것은 물론 다수의 어뢰정을 이용한 일제 뇌격 방식으로 적 함대에 큰 부담을 주는 것도 가능했다.
구축함: 수상함대의 만능일꾼. 적의 항공기의 접근을 방해하는 대공임무, 적의 잠수함을 상대하기 위한 대잠임무, 순찰임무는 물론 5~6인치 크기의 함포로 제한적인 포격전도 수행했으며, 어뢰 뇌격을 통해 적 함대의 주력함에게 위협을 주는 것도 가능했다. 보통 1 ~ 3,000톤 규모로 100~200명의 승조원이 탑승했다. 순양함, 전함등에 비해 빠른 속력과 기동성을 갖고 있어 다용도로 쓰이던 만능 군함이었다. 태평양 전쟁 중반기 들어 제해권, 제공권을 상실한 일본해군은 이 구축함을 통해 야밤에 병력과 보급물자를 수송했는데 연합국 측에서는 이를 도쿄 익스프레스라고 불렀다.
순양함: 본격적인 주력함선의 시작. 보통 4~10,000톤 정도의 배수량을 가지고 있었으며, 8인치 이상의 주포를 탑재한 채 적 주력함선과의 포격전을 상정하고 건조된 배였다. 다른 함선들에 비해 가장 바리에이션이 많은 함선으로 건조된 시기 및 목적에 따라 경순양함, 장갑순양함, 중순양함, 전투순양함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순양함이 건조되었다. 특히 순양함은 장기간의 원양항해가 가능했을 뿐 아니라 적 주력함과의 교전이 가능한 화력, 방어력을 갖추고 상대적으로 전함에 비해 빠른 속력을 가지는 특징등으로 인해 영국을 위시한 열강들의 식민지 운영에 있어 필수적인 함선이기도 했다.
전함: 제2차세계대전까지 각국이 건조에 사활을 걸었던 군함. 10,000 ~ 70,000톤이라는 어마어마한 배수량을 자랑했으며, 10 ~ 18인치 구경의 함포로 무장한 함대결전용 군함이었다. 보통 10~18인치 포신을 2 연장 또는 3 연장으로 구성된 3~4기의 포탑이 탑재되었으며, 각 포탑 에만 5~70명의 승조원이 배치될 정도로 거대했다. 이 시기 건조된 전함 주포의 사정거리는 20km ~ 30km 수준으로 최대사정거리가 수평선 너머였을 만큼 길었던 관계로 함에 적재된 수상정찰기를 발진시켜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탄착을 확인할 정도였다.
허울 좋았던 점감요격작전
1편에서 언급한대로 2차 대전 초반까지 전함을 주력으로 하는 수상함대 간의 결전을 통해 단시간에 제해권을 가져온다는 사상을 함대결전사상이라고 통칭했는데 태평양전쟁 발발 전 미국을 잠재적국으로 상정하고 있던 일본제국은 미국의 압도적인 공업력으로 인해 함대 간의 정면대결이 펼쳐질 경우 일본이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점감요격작전이라는 작전을 계획했다.
점감요격작전의 개요는 이러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해군은 일본해군과 함대결전을 벌이기 위해 태평양지역으로 진출할 것이고 이때 1차적으로 미함대의 이동 경로상에 매복해 있던 어뢰정, 잠수함등을 적극활용해 미국 함대전력의 10%를 손실시킨다. 이후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함재기들 공격으로 다시 10%의 미군 전력을 손실시킨다. 이어 순양함, 구축함 위주로 구성된 함대가 나머지 전력의 10%를 손실시키고 마지막으로 일본 주력전함들을 이용해 살아남은 미함대의 주력을 격멸한다.얼핏 보면 꽤 그럴싸한 계획이었지만 이 계획은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
1. 미군이 어느방향으로 올지 알 수가 없었다.
태평양은 대륙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광활한 바다였다. 아무리 거대한 규모의 함대라 할지라도 이런 태평양 바다에 흩뿌려 놓으면 나뭇잎 몇 개 띄워놓은 것과 별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엄청난 규모의 미 함대가 주공, 조공을 나누어 여러 방면에서 진격해 올 경우 어느 방향이 주공인지에 대한 판단이 어려울 뿐 아니라 이미 단계적으로 배치해 놓은 함선의 위치를 바꾸는 등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2. 미군의 함대결전을 회피할 경우에 대책이 없었다.
당시 일본은 당연히 미 함대가 함대결전을 위해 대규모 함대로 태평양에 진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만일 미군이 이를 회피하고 섬을 하나씩 점령하고 비행장을 건설하고 다시 섬을 점령하고 비행장을 건설하는 식으로 징검다리 전술을 쓰며 차근차근 진출할 경우 일본의 부족한 수송력과 공업력으로 인해 이 섬들을 방어할 수가 없었다. 또한 이경우 미 주력함대와 더불어 섬 곳곳에 건설된 비행장에서 이륙한 항공기의 공격까지 막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3. 미함대가 공격을 해와도 문제 공격을 안해와도 문제였다.
당시 일본제국이 얼마나 망상에 빠진 상태였는지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예시로, 일본군의 계획대로 태평양 남쪽 루트로 미군이 공격을 해오고 이에 맞춰 배치해 둔 첫 번째 잠수함들의 공격으로 인해 계획대로 10%의 손실을 입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2차로 일본 항공대의 공격으로 인해 다시 10%의 손실을 입었다고 가정해 보자. 상황이 이지경까지 악화되면 정상적인 국가의 군대라면 당연히 후퇴를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점감요격작전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1단계 혹은 2단계에서 철수한다고 보는 게 정상이다. 이지경까지 상황이 절망적인데 자살에 가까운 공격을 지속하는 바보짓은 일본제국이 아니고서야 감행할 나라가 없었다. (철수여부를 논외로 한다고해도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일본 잠수함과 항공모함은 미함대의 10%씩을 정확히 손실시켜야 했는데 전쟁이 게임도 아니고 애초부터 그게 가능할 리도 없었다.)
따라서 만일 미함대가 1,2단계를 거쳐서 계속 진격한다면 그것은 1,2단계에서 일본해군이 미함대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일본함대가 미함대의 주력전함과 맞딱드리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미함대가 대부분의 전력을 온전히 보전했다는 의미고, '란체스터의 법칙'을 고려해봤을때 물량에서 미함대보다 열세인 일본함대가 미 함대를 격멸 할 수 있을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결국 미함대의 주력전함과 교전이 이루어져도 문제고 교전이 없어도 문제라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야마토 호텔
아무튼 이러한 점감요격작전을 통해 미함대를 격멸시키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던 일본은 점감요격작전의 대미를 장식할 지상최대의 전함이 필요했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건조된 전함이 만재배수량 7만 2천 톤의 전함 야마토였다.
야마토는 18.1인치 주포 9문, 현측 최대장갑 660mm, 최대속도 27 knot, 승조원 2,7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스펙을 자랑했으며, 이는 일본제국 해군 더 나아가 일본제국의 자부심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거창한 스펙과 달리 전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최후의 함대결전을 위해 마련한 함정인 만큼 함부로 전투에 쓰이지 못한대신 애지중지 군항에 모셔두고 정부고위 관료들을 접대하는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어 당시 일본해군 장병들은 야마토 호텔이라고 빈정거릴 정도였다. (참고로 야마토급 전함 2번함 무사시의 별명은 료칸이었다.)
일본제국 함대 전투력이 실질적으로 소멸하게 된 레이테만 해전에서도 구리다 제독이 지휘하는 중앙함대의 주력전함으로 참전했으나, 이쯤이면 이미 일본해군 항공대는 괴멸되어 전혀 항공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미군 항공기의 공습으로 함대가 반신불수에 빠지게 되자 이렇다 할 교전 없이 본국으로 철수하였으며, 항구에틀어박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미 함재기들의 공습을 저지하기에도 벅찼다.
웅장한 함대결전은 고사하고 일본제국 해군 자체가 괴멸된 마당에 야마토는 그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오키나와전투가 임박하자 당시 육군은 히로히토 덴노에게 가미카제 공격을 계획 중이라고 보고했는데 이를 들은 히로히토는 '해군은 남은 함정이 없는가?'라고 되물었고 이 한마디에 세계 최대전함 야마토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해군은 즉시 천호 작전을 발령, 탈탈 털어 긁어모은 기름을 겨우겨우 야마토에 보급하여 간신히 오키나와까지 항해할 수 있는 연료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단, 덕분에 연료가 바닥난 관계로 야마토를 호위해 줄 다른 함선들은 출격할 수 없었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이었다. 어쨌든 야마토에게 하달된 최후의 임무는 다음과 같았다.
'오키나와까지 항해한뒤 항구에 좌초시켜 해안포대로 사용한다'
일본제국이 비장의 무기로 내세우며 애지중지 했던 세계최대의 전함 치고는 너무나도 허망한 임무였으며 사실상 항공전력이 괴멸된 상황에서 항공엄호도 전혀 받을 수 없었던지라 일단 오키나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당시 해군내부에서도 이 임무를 취소하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이 상황에서 일본 최고의 전함을 내버려 두면 해군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라는 의견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작전실행이 결정 된다.
야마토의 최후
결국 구축함 몇 척과 함께 외로운 항해를 떠나게 된 야마토는 항해에 떠난 지 고작 하루만인 1945년 4월 7일 사전에 야마토의 출격을 포착하고 있던 미 해군 항공대 120 여기의 공습을 받고 교전 두 시간여 만에 침몰하게 된다. 주포탑에 적재되어 있던 화약이 유폭 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타격이었는데 1발에 1톤이 넘는 포탄 1,000여 발이 탑재되어 있던 관계로 유폭시 버섯구름이 상공 10km까지 솟아올랐다고 한다.
이날의 전투교환비는 일본해군 전사자 4,400여 명에 미군 전사자가 10여 명으로 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전투교환비였으며, 사실상 이날로 반세기동안 전세계에 광풍을 몰고 왔던 거함 거포주의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열강은 전함과 순양함들을 차례로 도태시키고, 항공모함 및 이를 호위하기 위한 구축함 등을 주력으로 하는 항모전단을 구성하여 운용 하게 되었으며 함대간의 교전은 이제 함포가 아닌 함대함 미사일과 공대함 미사일을 통해 이뤄지게 되었다.
해전의 패러다임이 미사일의 투발과 요격으로 변화하면서 덩치가 큰 함선의 경우 피탄면적이 증가하여 방어가 어려워짐에 따라 각국의 주력함은 최첨단 공격 및 방어시스템을 탑재한 구축함급으로 통일되었으며, 설령 배수량이 구축함급을 초과하는 경우라도 상대국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구축함으로 명명하는 경우가 대다수 이다.
따라서 다시금 해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2차대전당시의 전함(Battle ship)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없으며
야마토급 전함의 사이즈를 가진 군함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항공모함 제외)
야마토는 그 무지막지한 사이즈와 더불어 시대착오적인 전술교리에 사로잡혀 현실파악을 못했던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수뇌부의 무능한 상징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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